'DLS사고'에 사모펀드 규제 강화…"빈대 잡자고 초가삼간 태우는 격"

입력 2019-11-15 17:15   수정 2019-11-16 01:09


“빈대 한 마리만 제대로 잡으면 될 일을 초가삼간 전체를 태우는 쪽으로 가고 있습니다.”(K자산운용사 대표)

금융당국이 ‘해외금리 연계형 파생결합증권(DLS) 사태’ 대응책으로 내놓은 ‘고위험 금융상품 투자자 보호 강화를 위한 종합 개선방안’의 불똥이 사모 헤지펀드업계로 튀었다. 당초 금융회사의 불완전판매를 막기 위해 시작된 대책이 엉뚱하게 한국형 사모펀드 시장 전체를 죽이는 결과를 낳게 됐다며 업계 전체가 격앙된 분위기다. 업계 한 관계자는 “금융사고가 터질 때마다 ‘사후약방문’ 격으로 뒷북 대응책을 쫓기듯 내놓으면서 엉뚱한 규제책을 쏟아내는 관행이 이번에도 여지없이 나타나고 있다”고 꼬집었다.


사모펀드 활성화에 찬물

15일 사모 헤지펀드 운용업계는 전날 발표된 정부 대책으로 ‘멘붕’에 빠졌다. 판매망이 축소되고, 가입 문턱이 높아지며 사실상 사모펀드 활성화는 물 건너갔다는 탄식이 나왔다. 신진호 마이다스에셋자산운용 대표는 “고액자산가의 전유물이었던 사모펀드의 저변을 넓혀가야 하는 시점에서 오히려 시장 성장을 위축시키는 조치”라고 평가했다.

최소 투자금액을 1억원에서 3억원으로 상향 조정한 것이 가장 큰 문제로 꼽혔다. 사모펀드 운용사들은 고객 확보에 비상이 걸릴 것으로 예상했다. 한 자산운용사 대표는 “투자자는 자산을 부동산, 위험자산, 안전자산 등에 분산투자하기 때문에 한 펀드에 1억원을 넣을 수 있다는 것은 자산 규모가 최소 수억원 이상인 자산가임을 의미한다”며 “3억원으로 기준이 높아지면 일부 초고액자산가 이외에는 사모펀드에 투자할 수 없게 되는 셈”이라고 지적했다. 결국 사모펀드가 고액자산가들의 특권 상품으로 축소될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신생 운용사는 설 자리도 없어

당초 정부는 공모펀드 시장이 위축되자 투자자의 선택권을 넓히고 모험자본을 활성화한다는 등의 취지로 사모펀드 규제를 대폭 풀었다. 당초 5억원이던 최소 투자금액을 1억원으로 낮춘 것도 그래서였다. 업계 관계자는 “불완전판매에 대한 핀셋 규제면 될 일인데 투자자에게 광범위하게 영향을 미칠 일반 규제까지 다시 조이는 갈지자 정책을 펴고 있다”며 “시장은 누구를 믿고 가야 하느냐”고 반문했다.

이번 대책으로 신생 운용사들엔 비상이 걸렸다. 지난해 운용사 인가를 받은 H사 대표는 “고객에게 생소한 신생 운용사로선 최소 투자금액 1억원도 고객을 모으는 데 큰 장벽”이라며 “앞으로 운용사들의 신규 시장 진입은 더 어려워지고 진입한다 하더라도 살아남기는 하늘의 별 따기가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번 대책이 당국 의도와 달리 자산운용업계 구조조정 태풍으로 이어질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당국의 육성책에 힘입어 무서운 속도로 성장하던 한국형 헤지펀드는 지난 8월 말 34조9220억원으로 정점을 찍은 뒤 내리막을 걷고 있다. 사모 헤지펀드 사업을 접는 운용사도 등장하고 있다. 교보악사자산운용, 하이자산운용 등은 라임사태 이후 사업을 포기하거나 보수적으로 펀드를 운용하고 있다.

정작 중요한 투자자 교육은 빠져

한 자산운용사 관계자는 “그간 사모펀드가 공모펀드로는 반영하기 어려운 다양한 고객 수요에 맞는 상품을 출시하는 것은 물론 신규 운용사 설립으로 고급 일자리 창출에도 많은 기여를 해왔지만 앞으로 이런 역할이 급격히 축소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당국은 이번 대책에서 내부통제와 관련해 경영진 책임을 대폭 강화하는 방안도 내놨다. 한 자산운용사 대표는 “상품 기획과 판매 과정을 관리·심의할 전문가를 육성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며 “대표에게 모든 책임을 지라고 한다면 결국 아무도 사모펀드를 판매하려 하지 않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다른 운용사 대표는 “이번 대책에는 정작 중요한 투자자 교육도 빠져 있다”며 “금융상품의 투자 위험성을 투자자 스스로가 잘 숙지하도록 하는 교육과 캠페인을 당국 차원에서 신경써야 한다”고 강조했다.

강영연/한경제 기자 yyka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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