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대통령이 이런 의견에 관심을 보여 한·일 지소미아 파기에 대한 생각을 바꿀 가능성은 크지 않아 보인다. 일본이 수출규제를 일부 완화하는 정도에 그쳐서 명분이 없고, 지지층의 상당한 이탈을 각오해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권위의 손상도 적지 않을 것이다. 최근 미국 국방장관과 합참의장이 문 대통령 면담 전후에 지소미아 연장의 필요성을 다각적으로 밝혔지만, 정부 입장은 요지부동이었다. 지소미아 파기와 수출규제가 한·일 양국 지도자의 자존심 대결로 변모된 느낌도 있다.
지소미아 자체는 중요한 사안이 아니다. 국가 간에 군사비밀을 교환할 경우 누설하지 않겠다고 약속하는 문서에 불과하다. 한국이 러시아, 우크라이나, 폴란드를 포함한 30여 개 국가, 일본은 60여 개 국가와 지소미아를 체결하고 있듯이 최근에는 외교관계 활성화의 상징적 협정으로 활용되기도 한다. 그런데 한국이 이런 기본적인 협정을 일본과 유지하지 않겠다는 것은 한·일 관계가 앞에 열거된 국가들과의 관계보다 덜 중요하다는 것이고, 결과적으로 한·미·일 안보협력 체제를 포기하겠다는 의도로 해석될 수 있다. 미국이 지소미아 연장을 적극 주장하고, 이의 파기는 북한, 중국, 러시아를 도와주는 일이 된다고 말하는 이유다.
이런 점에서 지소미아 파기와 관련해 우리는 핵무기도 없는 한국이 한·미·일 안보협력체제에 의존하지 않은 채 북핵 위협으로부터 국민을 어떻게 보호할 것이냐 하는 근본적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다. 정부는 북한이 핵무기 폐기를 위한 전략적 결단을 내렸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2018년 4월 27일 판문점에서 ‘완전한 비핵화’ 의도를 공식화한 뒤 2년 가까이 지난 현 시점까지 북한이 핵무기 폐기를 위해 확실하게 약속하거나 조치한 사항은 없다. 미국과 북한 간 회담도 결렬된 상태이고, 북한은 다양한 단거리 미사일을 개발해 한국에 대한 공격능력을 강화하고 있다. 전 미 국가안보보좌관 허버트 맥매스터 장군은 한·미 동맹을 이간시키고 적화통일을 달성하는 것이 북한의 핵무기 개발 목적이라고 평가했다. 이렇듯 자칫하면 한국은 북한으로부터 공산화 통일을 수용하거나 핵공격으로 초토화되는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는 압력을 받을 수도 있다. 핵무기도 없는 상황에서 미국, 일본과의 안보협력을 소홀히 한 채 한국이 이런 상황을 타개할 수 있는 방안은 없다.
헌법 제66조 2항에 명시돼 있듯이 대통령의 가장 중요한 책무는 ‘국가의 독립과 영토의 보전’ 즉, 국가안보다. 경제는 잘못됐을 경우 시간이 걸릴지언정 회복이 불가능하지는 않지만, 개인의 생명처럼 안보는 한 번 잘못되면 국가 파멸에 이를 수 있다. 북핵 위협에 전전긍긍하고 있는 국민들은 대통령에게 개인적인 감정이나 자존심보다는 국가안보를 우선시할 것을 바랄 것이다. 남한 공격용 핵무기를 개발해온 북한에는 유화적이면서 일본과 미국에 대해서는 이렇게 강경한 것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감정에 치우쳐 외교를 그르침으로써 처참한 피해를 본 임진왜란, 정묘·병자호란, 한·일강제병탄의 역사가 재연될까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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