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일 만난 미야모토 다쿠토 일본 문부과학성(교육부) 국제협력기획실장의 말이다. 일본은 국제 공인 교육프로그램 및 대입시험인 국제바칼로레아(IB)를 자국어로 번역해 2020년까지 200개 학교에 도입하기로 각의(국무회의)에서 결정해 추진하고 있다. 전 과목 토론·논술로 변화가 시작된 학교는 올 7월 기준 IB 인증 후보학교 포함 146개교다. IB를 도입한 이유는 일본의 국가 교육 과정 및 목적, 내용이 일치하고 비판적·창의적 사고력을 기르는 수업 설계와 평가 방식을 배울 수 있어서라고 한다.
미야모토 실장은 기존에 학비가 비싼 국제학교나 사립학교에서만 운영하던 IB 교육을 공립학교에 도입해 교육의 양극화, 계급화를 줄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무엇보다 전 과목 논술의 비판적·창의적 사고력 평가를 글로벌 표준으로 채점할 수 있는 공립학교 교원을 길러내면 그들이 다른 학교로 전근 가면서 이런 역량이 점차 확산돼 궁극적으로 공교육의 질 향상을 기대할 수 있다고 했다.
일본 오카야마국립대 입학처장과 부총장을 지낸 다하라 마코토 교수는 일본의 수능시험과 대학별 본고사가 모두 정답이 정해져 있는 시험이라 학생의 역량을 제대로 파악할 수 없다며 7년 전 오카야마대에 IB 학생 입학전형을 따로 만들었다. 이제는 도쿄대를 비롯해 일본 내 61개 대학에 IB 전형이 생겼다. 다하라 교수는 “IB는 귀족 교육, 엘리트 교육이 아니다”며 ‘모두를 위한 IB’ 심포지엄을 작년 9월 개최했다. 자기 의견을 말해도 감점당하거나 처벌받지 않는 분위기를 조성해주면 성적이 낮은 아이들도 자신감과 사고력을 발전시켜 포기가 줄어들고 동기를 찾는다는 사례를 이 자리에서 공유했다. 특히 저소득층 아이들에게도 자기주도력과 동기유발 효과가 있다고 강조했다.
2015년 미국 시카고교육청에 따르면 교육청 관할에 658개 학교, 40만 명의 학생이 있는데 이 중 40%가 흑인, 45%는 히스패닉이고, 저소득층이 86%였다. 1980년 IB 프로그램이 1개교 31명에게 처음 도입된 이후 2018년 79개교 2만5000명으로 늘어났다.
IB를 도입한 학교가 폭발적으로 증가한 것은 2009년 시카고대에서 시카고 공립학교에 적용한 IB 교육의 효과성 연구를 발표한 이후부터다. 시카고대 연구팀은 저소득층 학생도 IB 교육을 받은 경우 대학 진학률, 명문대 진학률, 대학교육 적응력 등 교육 효과가 뚜렷하게 우수했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이런 효과는 IB 점수 우수자에게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디플로마를 취득하지 못한 학생도 마찬가지였다.
현재 시카고 공립학교의 IB 교육 학생은 70%가 흑인과 히스패닉이고, 79%가 저소득층이다. 연구 결과 IB 교육을 받으면 그렇지 않은 학생에 비해 성적이 낮더라도 자신감과 행복지수가 높았다. 이 결과를 보고 2012년 시카고의 람 이매뉴얼 시장과 교육위원회는 IB 교육을 시카고 공립학교 전체에 확산하기로 결정했다. 시카고교육청은 2020년까지 IB를 86개교 3만2000명 학생에게 제공한다는 방침이다.
세계는 이렇게 교육 개혁을 진행하고 있는데, 우리는 몇 년째 학종·수능 논란에 갇혀 있다. 학종은 불공정하고 수능은 시대 역량을 평가하지 못해 타당하지 않다고 비판받는다. 학종·수능 프레임에서 벗어나 제3의 대안을 생각하자. 수능 문제를 객관식이 아니라 비판적·창의적 사고력을 평가하는 전 과목 논술형으로 선진화해 10~15년 계획으로 ‘한국형 바칼로레아’ 체제를 마련하면 정시 100%라 해도 공정성과 타당성을 모두 잡을 수 있다. 채점의 공정성은 수십 년 이상 전 과목 논술 대입시험을 공정하게 치러온 선진 사례를 배우면 된다. 수능이 이렇게 바뀌면 필연적으로 고등학교 수업도 바뀐다.
제주교육청과 대구교육청은 이미 IB 한국어화에 착수하고 전 과목 논술의 IB 교원 양성을 시작했다. 글로벌 표준으로 논술을 채점할 수 있는 교원이 양성되기 시작하면, 이들은 현재의 객관식 수능을 논술형 수능 체제로 바꿀 때 결정적 자산이 될 것이다. 평가 패러다임을 개혁하면 교원 양성, 수업 방법, 길러지는 능력 모두 바뀐다. 대입 논란의 해법이자 교육 양극화를 줄이는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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