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위기 극복 위해 기존의 틀과 한계 깨자"

입력 2019-11-19 17:11   수정 2019-11-20 02:27

19일 오전 11시45분께 검은색 제네시스 EQ 900 50여 대가 줄지어 경기 용인 삼성 인력개발원 호암관으로 향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주최한 ‘오찬 모임’에 참석하는 삼성 계열사 사장들의 차량 행렬이었다. 이 부회장은 이날 홍라희 전 리움미술관장, 이서현 삼성복지재단 이사장 등 가족과 함께 오전 10시30분께부터 삼성그룹 창업주 호암 이병철 선대 회장의 32주기 추모식을 치른 뒤 오찬장으로 향했다. 이 부회장이 가족과 함께 호암 기일에 맞춰 추모식에 참석한 것은 2016년 이후 3년 만이다.

첫 사장단 모임에서 ‘사업보국’ 강조

오찬 모임엔 삼성전자 권오현 종합기술원장(회장), 김기남 DS(디바이스솔루션)부문 대표(부회장), 신종균 인재개발담당 부회장, 윤부근 대외협력담당 부회장 등 삼성 계열사 사장급 이상 최고위 임원 50여 명이 참석했다. 이 부회장이 삼성 계열사 사장 이상 최고위급 모임을 주재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오찬에서 이 부회장과 삼성 최고위급 임원들은 삼성의 창업 이념인 ‘사업보국(事業報國)’의 의미를 함께 되새겼다. 사업보국이란 말에는 ‘기업을 통해 국가와 인류사회에 공헌하고 봉사한다’는 이병철 선대 회장의 뜻이 깃들어 있다. 이병철 선대 회장은 자서전 <호암자전>에 “정치의 안정을 확고하게 만드는 기반은 우선 경제의 안정에 있고 거기에 수반해 민생도 안정된다”며 “나의 국가적 봉사와 책임은 사업의 길에 투신하는 것”이라고 썼다.


삼성의 경영 패러다임은 ‘상생’

이 부회장은 이날 “사업보국 이념을 기려 우리 사회와 나라에 보탬이 되도록 하자”고 말했다. 지난 1일 삼성전자 창립 50주년 기념 방송에서 임직원들에게 전한 “같이 나누고 함께 성장하는 것이 세계 최고를 향한 길”이란 메시지의 연장선상에 있다는 게 삼성 관계자들의 얘기다. 부친인 이건희 회장이 1993년 독일 프랑크푸르트 선언에서 “마누라와 자식만 빼고 다 바꿔라”라며 일류 기업의 조건으로 ‘변화’를 강조한 것처럼 이 부회장은 ‘상생’을 새로운 경영 패러다임으로 제시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삼성 관계자는 “삼성전자뿐만 아니라 전 계열사가 ‘상생’의 가치를 새로운 성장전략이자 경영철학으로 새기는 게 ‘사업보국’이 될 수 있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그룹 구심점 되겠다는 의지 표명

이 부회장은 미·중 무역 분쟁과 일본의 경제 보복 등 어려운 대내외 경영 환경에서도 회사를 안정적으로 이끌고 있는 삼성 계열사 경영진에게 감사의 뜻을 전했다. ‘위기 극복’ 의지도 다시 강조했다. 그는 “지금의 위기가 미래를 위한 기회가 되도록 기존의 틀과 한계를 깨고 지혜를 모아 잘 헤쳐 나가자”고 당부했다.

경제계에선 이 부회장이 호암 추모식에 맞춰 사장단 모임을 주재하고 메시지를 낸 것에 대해 ‘그룹의 구심점이 되겠다’는 의지를 선언했다고 평가한다. 한 관계자는 “재판(22일 뇌물사건 파기환송심 2차 공판)을 사흘 앞두고 이 부회장이 경영진에게 메시지를 던지면서 ‘흔들림 없는 경영’에 대한 의지를 표명했다”고 말했다.

CJ, 신세계 등 범(汎)삼성가도 추모 행사를 했다. 이재현 CJ그룹 회장과 자녀들은 오전 9시께 선영을 찾았다. 오후 6시께엔 서울 중구 필동 CJ인재원에서 이재현 회장이 제주(祭主)가 돼 제사를 치렀다. 신세계그룹에서는 장재영 신세계백화점 대표, 강희석 이마트 대표 등 계열사 사장단이 이날 오후 선영을 참배했다. 정용진 부회장, 정유경 총괄사장 등 신세계 총수 일가는 예년처럼 추모식에 참석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용인=황정수/정인설 기자 hj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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