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신용평가회사인 무디스가 내년 한국 기업들의 신용등급이 무더기로 강등될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경고했다. 미·중 무역갈등과 홍콩 사태 등 글로벌 정치·경제에 불확실성이 커진 가운데 국내 경기 침체와 일본 수출규제 등의 여파로 기업 영업실적 악화가 이어질 것이란 전망이다.
무디스는 19일 서울 여의도 콘래드호텔에서 한국신용평가와 공동으로 ‘2020 한국 신용전망’ 세미나를 열어 내년 한국 경제 성장률이 2.1%에 머물 것으로 내다봤다. 최근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예상한 2.2~2.3%보다 낮은 수준이다.
무디스는 반도체, 자동차, 철강, 통신, 유통, 정유, 화학 등 주요 업종의 신용 전망을 ‘부정적’으로 평가했다. ‘긍정적’으로 전망한 업종은 한 개도 없었다. 무디스는 신용등급을 부여한 한국 기업(금융사·공기업 제외) 24곳 중 절반이 넘는 14곳의 신용도에 부정적 전망을 달아놓고 있다. 지난해(5곳)보다 세 배 가까이 증가한 수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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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디스 "한국 기업 내년에도 수익 악화
신용등급 긍정적 업종 全無"
글로벌 신용평가회사들이 한국 간판 기업들의 신용등급이 줄줄이 떨어질 수 있다는 경고음을 높이고 있다. 올해 신용등급 강등 위험에 놓인 곳이 하나둘씩 늘었다면 내년부터는 기업들이 한꺼번에 등급 강등에 내몰릴 것이란 의미다.
간판기업에 줄줄이 적신호
무디스는 올 하반기 들어 본격적으로 한국 기업의 신용등급에 적신호를 켜고 있다. 지난 8월 강등된 지 석 달밖에 안 된 이마트 신용등급(Baa3) 전망을 ‘안정적’에서 ‘부정적’으로 변경한 데 이어 LG화학(A3), SK이노베이션(Baa1), 현대제철(Baa2) 등의 신용등급에 연이어 부정적 전망을 제시했다. 지난 18일엔 KCC의 신용등급을 투기등급인 ‘Ba1’으로 떨어뜨렸다. 등급 강등 후에도 부정적 전망이란 꼬리표를 달아 추가 하향 조정 가능성도 남겼다. 무디스는 이들 기업 모두 영업환경 악화로 이익 규모가 감소하고 차입 부담이 커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고용, 소비, 수출, 투자 등 주요 경기지표가 갈수록 나빠지는 가운데 미·중 무역갈등과 한·일 무역마찰, 홍콩 사태 등 글로벌 무역환경을 둘러싼 불확실성까지 커지면서 한국 기업들의 신용 위험을 키우고 있다는 분석이다. 특히 수출 의존도가 높은 자동차, 반도체·디스플레이, 화학 업종이 이 같은 변화로 악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고 평가했다.
무디스는 올 들어서만 두 차례 한국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낮췄다. 2.3%로 유지해온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지난 3월 2.1%로 떨어뜨린 데 이어 8월엔 2.0%로 하향 조정했다. 내년 성장률 전망치도 당초 2.5%에서 2.2%로 낮춘 뒤 다시 2.1%로 내렸다. 또 다른 글로벌 신용평가사인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2.1%)와 피치(2.3%)도 내년 성장률 전망치를 떨어뜨리며 비관적 전망을 이어가고 있다.
“내년 신용도 하락세 더 강해진다”
간판 기업마저 신용등급이 무더기로 떨어질 위기에 놓일 정도로 한국 기업들이 숨 가쁜 환경에 내몰릴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올 3분기 유가증권시장 상장사 579곳(금융회사 등 제외)의 영업이익은 27조8362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41.3% 감소했다. 2012년 국제회계기준(IFRS) 도입 이후 최악의 분기 실적이다. 지난해 4분기부터 네 분기 연속 전년 동기 대비 두 자릿수 감소율을 기록했다.
국내 신용평가사들은 올 들어 다시 기업들의 신용등급을 떨어뜨리기 시작했다. 한국신용평가가 올해 1~9월 신용등급을 하향 조정한 비금융기업은 총 12곳이다. 등급을 올린 기업 수(8곳)보다 많다. 지난해에는 등급이 오른 곳이 떨어진 곳보다 많았다.
신용등급이 강등될 가능성이 높은 기업도 늘고 있다. 한국신용평가가 신용등급 하향 조정을 검토 중이거나 등급 전망을 부정적으로 붙인 기업 수는 26곳이다. 지난해 말(18곳) 대비 44.4% 증가했다.
유건 한국신용평가 기업평가본부장은 “기업 실적과 재무구조 악화의 이면엔 내수 부진, 무역환경 악화, 산업 패러다임 전환 등 구조적 요인이 자리잡고 있다”고 했다. 그는 “이 같은 상황이 단숨에 해결되기 어려운 만큼 내년 기업 신용도 하락 추세는 더욱 강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정부 부채 증가에도 주목
경기 침체와 기업 실적 악화에 대응하기 위해 정부가 재정 확대에 나서면서 국가 부채 부담이 증가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정부는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하에도 경기가 회복 기미를 보이지 않자 대규모 추가경정 예산을 편성하는 등 재정정책에 힘을 싣고 있다.
무디스는 정부의 이 같은 움직임으로 중기적으로 한국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 채무비율이 42%까지 상승할 것으로 예상했다. 다만 아직 국가 신용도를 끌어내릴 만한 수준은 아니라고 평가했다.
김진성 기자 jskim1028@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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