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기자 칼럼] 쾰른대성당의 파이프오르간

입력 2019-11-20 17:20   수정 2019-11-21 00:25

라인강변에 있는 독일 쾰른은 유서 깊은 도시다. 로마 시대의 식민도시에서 유래된 곳이다. 물류 중심지여서 10∼15세기에는 독일 최대 도시로 번창하기도 했다. 이곳의 명소는 쾰른대성당이다. 첨탑 높이가 무려 157m에 이른다. 미사 시간엔 웅장한 파이프오르간 소리에 놀라게 된다. 운 좋게 헨델의 메시아를 듣는다면 황홀한 경험을 할 수도 있다.

이곳엔 모두 세 대의 파이프오르간이 자리 잡고 있다. 중앙제단을 바라보고 왼쪽엔 7000개, 오른쪽에 2000개, 뒤쪽에 1000개의 파이프가 설치된 오르간이 있다. 파이프가 모두 1만 개에 이른다. 파이프오르간은 오케스트라 악기다. 중후한 튜바소리, 경쾌한 트럼펫소리, 부드러운 호른소리 등 못 내는 소리가 없다. 하지만 이 악기에서 파이프보다 더 중요한 게 목재다. 전체 구성 요소의 70%를 차지한다. 굴참나무 단풍나무 등 30여 종의 나무가 바람통 페달 밸브 등 적재적소에 자리 잡고 있다.

마이스터 손끝에서 명품 탄생

이를 제작한 기업은 이곳에서 차로 30분가량 떨어진 본에 있는 클라이스다. 종업원 65명의 작은 기업이다. 고색창연한 벽돌 건물에 있는 이 회사에 들어서면 나무 냄새가 코를 찌른다. 클라이스는 누가 찾아와도 공장을 안내해준다. 경쟁사가 찾아와도 마찬가지다. 그런데도 쉽게 벤치마킹할 수 없다. 이유가 뭘까.

첫째, 목재에 관한 노하우다. 목재는 수종에 따라 수개월 혹은 수년간 그늘에서 말린다. 갈라지거나 휘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어디서 어떤 목재를 구해 얼마 동안 건조하는지 쉽게 익힐 수 없다.

둘째, 창의성이다. 이 회사는 1882년 창업한 뒤 한 번도 같은 제품을 생산한 적이 없다. 매번 색다른 디자인과 음색을 가진 악기를 제작해왔다. 이 회사 경영자는 “우리는 단순한 제품을 만드는 게 아니라 작품을 제작한다”고 설명한다. ‘혼이 담긴 예술작품’이라는 의미다.

셋째, 숙련된 직원들이다. 직원은 대개 20~30년 경력자다. 이들이 나무를 켜고 대패질하고 파이프를 제조한다. 마이스터(장인)도 5명 있다. 이들은 자신의 직업을 천직으로 여긴다. 단순히 ‘돈 버는 직업’이 아니라 ‘신으로부터 받은 소명’으로 생각한다. 명품은 이들의 손끝에서 탄생한다.

장인 없이 제조업 부활 어려워

독일은 마이스터의 나라다. 클라이스뿐 아니라 명품가전업체 밀레 역시 130여 명의 마이스터가 제품의 품질 개선은 물론 신제품 개발 신입직원훈련 등을 담당한다. 자동차 마이스터들이 만드는 독일 자동차는 전 세계 고급차 시장을 석권하고 있다. 기계나 로봇 의료기기 정밀화학 분야도 마찬가지다.

이 회사는 몇 가지 생각할 점을 던진다. 한국엔 이런 정신으로 제품을 만드는 중소기업이 얼마나 있는지, 정부는 이런 업체들이 성장할 수 있도록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지, 사회는 혼이 담긴 제품을 제작하는 업체들에 어떤 관심을 보이는지 등이다. 더욱 중요한 것은 묵묵히 일하는 장인들을 어떻게 대우하고 있는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불황이 닥치면 구조조정 1순위로 여기는 사례가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그러는 사이 장인 배출의 요람 특성화고는 위기를 맞고 있다. 취업률은 급락하고 신입생 모집은 쉽지 않다. 수많은 젊은이는 공무원 시험에 매달리고 있다. 마이스터의 나라 독일과 공무원의 나라 한국은 이렇게 다른 길을 가고 있다. 이 문제를 풀지 않으면 제조업 르네상스는 연목구어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nh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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