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정부도 기업도 '단기 실적주의' 경계해야

입력 2019-11-21 17:38   수정 2019-11-22 00:11

상장사 배당성향(배당금/순이익)이 30%를 돌파할 것으로 예상되면서 ‘고배당 논란’이 불거지고 있다. 순이익이 한 해 전의 절반 수준으로 추락한 상황에서 배당만 늘고 있어서다. 기업들의 미래 투자여력 소진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그간 한국 상장사들의 배당성향이 상대적으로 낮았던 만큼 배당 확대를 나쁘게만 볼 이유는 없다. 하지만 배당여력 확대에 따른 자연스러운 움직임이라기보다 일부 정치권과 투기적 펀드에 의해 주도되는 듯해 걱정스럽다. 최근 단기차익을 노리고 경영 개입을 불사하는 행동주의 펀드와 ‘연금사회주의’라는 비판에 귀를 막은 채 ‘스튜어드십 코드’를 밀어붙이는 기관투자가들이 급증한 게 우리나라 증권시장의 현주소다.

배당 확대 속도가 너무 가파르다는 점이 우려를 더한다. 한국 기업들의 배당성향은 주요 선진국과 비교해도 결코 낮지 않은 수준까지 높아졌다. 상장사들의 올해 예상 배당수익률(주당배당금/주가)은 2.37%로 독일(3.00%)에는 못 미치지만 미국(1.88%) 중국(2.32%) 일본(2.35%) 등 주요국을 앞선다. 특히 대표기업들의 배당 확대 속도는 너무 가파르다. 매출 상위 20대 상장사의 올해 배당성향(1~3분기)은 36.4%로 한 해 전 16.3%의 두 배, 2017년의 9.8%에 비해서는 네 배 수준이다.

‘코리아 디스카운트’로 불리는 만성적인 한국 증시 저평가의 한 요인이 저배당이라는 측면을 무시할 수는 없다. 그렇지만 고배당이 절대선이고 선진 증시의 필수조건인 것처럼 몰아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올 상반기 배당수익률 상위권에 러시아 터키 호주 이탈리아 영국 스페인 등 경제위기를 겪고 있거나 경기부진에 시달리는 나라가 대거 이름을 올렸다는 점에서도 고배당이 경제 우등국이나 선진 증시를 가르는 기준이 될 수 없음은 분명하다. 유가증권시장의 외국인 지분율이 40%에 달하는 상황에서 배당 확대가 소비 활성화로 이어질 것이라는 과도한 기대도 금물이다. 최근 2년간 배당이 급증했지만 국내 소비부진이 심각하다는 사실에도 주목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각 나라와 기업마다 배당여건이 다르다는 점이 중요하다. 한국은 설비투자 수요가 큰 중후장대 산업이 많다는 점이 고려돼야 할 것이다. 그릇된 인식에 기초한 배당압박도 중단돼야 한다. “사내유보금을 수백조원씩 쌓아두고 배당은 쥐꼬리만큼만 한다”는 따위의 주장이 대표적이다. 이익금을 어딘가에 투자하면 회계장부상 유보금으로 잡히기 때문에 실제 보유하는 현금은 그리 많지 않다는 점을 누누이 설명해도, 못 들은 척하는 국회의원이나 좌파 시민단체가 한둘이 아니다.

기업 경영목표는 배당 극대화가 아니라 기업가치 극대화여야 한다. 장기성장을 위한 투자재원을 고갈시키는 배당은 독(毒)일 뿐이다. 투자 확대를 통한 성장전략의 유용함은 스티브 잡스 시절 줄곧 무(無)배당 정책을 취했던 애플의 성공이 잘 보여준다. 가뜩이나 신성장동력 부재로 한국 경제 전반이 활력을 잃은 상황에서 단기실적을 위한 배당 압박은 바람직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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