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점 와인의 비결? 포도와 땅에 다 맡겼다"

입력 2019-11-21 17:56   수정 2019-11-22 00:53

2000년 미국 나파밸리가 술렁였다. 누군가 역대 가장 비싼 값을 주고 진흙과 자갈이 뒤섞인 4만500㎡(약 1만2200평) 면적의 와이너리를 샀다는 이야기가 돌았다. 그 땅에서는 자라기 어렵다고 알려진 ‘카베르네 소비뇽’ 품종을 키운다고 했다. 새 와이너리 주인은 프랑스 보르도 출신인 세계적 양조 전문가 필립 멜카, 나파밸리 최고의 와인 컨설턴트 짐 바버 등을 영입했다. 2년 뒤 ‘헌드레드에이커 카일리 모건’이라는 이름으로 나온 와인은 세계적인 와인 평론가 로버트 파커로부터 “완벽에 가깝다”는 찬사와 함께 평점 100점을 받았다. 매년 최고점을 받으며 지금까지 22회 100점을 받았다. 최단 시간에 이룬 세계 최다 기록이다.

이곳에서 나오는 와인 한 병을 사려면 5년을 기다려야 한다. 연간 생산량은 약 1만2000병. 한 병에 수백만원 한다. 이 와이너리의 주인은 ‘나파밸리의 스티브 잡스’로 불리는 제이슨 우드브리지 헌드레드에이커 대표(56·사진)다. 그를 지난 20일 서울 청담동에서 만났다.

캐나다 태생인 우드브리지는 1998년까지 투자은행에서 석유 등 원자재 투자를 담당하는 펀드매니저였다. 18세 때 암 투병을 한 뒤 “한 번 살 거면 최고가 되자”고 결심했다. 금융계를 떠나 전 재산을 나파밸리에 쏟아부었다. ‘사람’과 ‘땅’에 투자했다. 10년간 땅을 보고 다닌 뒤 나파밸리에 네 곳, 호주에 한 곳을 샀다. 그는 “와인은 신의 영역이 90%고 사람의 영역은 10%다. 최고의 양조팀을 만든 뒤 마음에 드는 땅이 아니면 절대 포도를 심지 않았다”고 말했다.

헌드레드에이커는 기존 와인 양조의 상식을 깬 곳이다. 카베르네 소비뇽이 자라기 어려운 곳에서 100% 단일 품종의 와인을 만들었다. 99%의 양조장이 하고 있는 ‘레킹(불순물 제거 작업)’도 하지 않는다. 손으로 한 알 한 알 알맞게 익은 포도를 따 저온에서 28개월을 발효한 뒤 자연 숙성 되도록 했다. 그는 “그냥 좋은 것과 최고는 전혀 다르다”고 했다. 와인이 산소와 만나는 과정을 최소화하고 지하 100~130m에서 자연 숙성시킨다. 와인을 즐기는 방법도 다르다. 그는 와인잔을 두 손으로 감싼 뒤 “손의 온기를 잔에 전달하면 향이 더 진하고 풍성하게 올라온다”며 “다른 와인과 달리 1주일에서 한 달간 와인을 열어두면 천천히 즐길 수 있다”고 설명했다.

헌드레드에이커의 와인 라벨은 다 똑같다. 완벽하지 않은 와인은 다 버린다. ‘카일리 모건’ ‘아크’ ‘퓨앤파’ 등 각각 다른 밭에서 나온 다른 빈티지지만 모두 하나의 라벨을 쓴다. 그는 “가장 흔한 품종인 카베르네 소비뇽을 가장 완벽하고 순수한 상태로 즐길 수 있게 만들었다”고 소개했다.

왜 와인 제조를 하게 됐냐고 물었다. 그는 “금융에 종사하며 불확실성과 혼돈의 시대에 대한 생각이 많아졌다”며 “와인 한 잔으로 매일 누군가에게 가장 평화롭고 완벽한 위안을 주고, 평생 각인될 와인을 만들고 싶었다”고 했다. 헌드레드에이커라는 이름은 ‘곰돌이 푸’에 등장하는 비밀의 숲의 이름이기도 하다. 그는 어린 시절 캐나다에서 뛰어놀던 숲을 생각하며 이름 붙였다.

헌드레드에이커는 작년부터 한국에 와인을 수출하고 있다. 지금까지 80병이 들어왔다. 곧 추가로 수입 된다. 대기자가 있음에도 한국에 수출한 이유에 대해 그는 “완벽한 와인을 세상과 나누는 것은 와인 메이커의 미션”이라고 답했다.

김보라 기자 destinybr@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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