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해영의 데스크 시각] 찬바람에 떠는 키즈 유튜버들

입력 2019-11-24 17:33   수정 2019-11-25 00:26

피규어 인형을 소개하는 유튜브 채널을 운영 중인 A씨는 고민에 빠졌다. 유튜브 본사가 내년부터 아동용 콘텐츠 제재를 대폭 강화한다는 방침을 공식 발표했기 때문이다. A씨는 “영상을 아동용으로 표시하면 광고 수입이 절반 이하로 줄어들 게 뻔하다”며 “피규어는 어른들도 좋아하는 콘텐츠인데 아동용으로 지정하면 나만 손해”라고 불만을 토로했다.

2개월 전 관련 규제를 사전공지했던 유튜브는 지난 12일 새 정책을 설명하는 동영상을 공개했다. 내년부터 적용되는 새 규칙은 아동용 채널을 운영하는 크리에이터에게 채널이 아동용인지 또는 개별 영상이 아동용인지를 표시하도록 요구한다. 키즈 콘텐츠로 분류되면 시청자 정보 수집이 막힌다.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개인 맞춤형 광고가 붙지 않는다는 뜻이다. 예를 들어 정보기술(IT) 콘텐츠를 주로 보는 시청자에게 전자기기 신제품 광고를 띄워주는 방식이 적용되지 않는다. 대신 동영상 내용이나 맥락과 관련 있는 일반광고만 허용된다. 구매력이 떨어지는 아동을 겨냥한 광고가 주로 붙으면 광고 단가와 수익 하락은 불가피하다.

새 정책에 유튜버들 '부글부글'

유튜브가 칼을 빼든 것은 지난 9월 미국 연방거래위원회(FTC, 한국의 공정거래위원회 격)로부터 1억7000만달러(약 2000억원)의 과징금을 맞았기 때문이다. 13세 미만 어린이의 정보를 부모 동의 없이 모으지 못하게 한 미국의 아동온라인사생활보호법(COPPA)을 위반했다는 혐의다. COPPA는 미국법이지만 유튜브는 관련 대책을 모든 국가에 적용하기로 했다.

유튜브의 발표 영상엔 열흘 만에 4만5000개가 넘는 댓글이 달렸다. 영어, 스페인어, 아랍어 등 언어도 다양하다. 대부분 새 정책을 비판하는 내용이다. 바뀐 규정을 들여다보면 유튜버들이 불만을 가질 만하다. A씨처럼 콘텐츠가 아동용인지 성인용인지 모호한 경우가 대표적이다. 어린이와 부모의 일상생활을 브이로그 형식으로 만들어 올린 영상은 어느 쪽에 속할까. 문제는 콘텐츠 지정을 잘못했을 경우 책임은 고스란히 채널 운영자가 진다는 점이다. 어른을 위한 영상이라 생각하고 올렸다가 유튜브의 머신러닝이 아동용이라고 ‘기계적으로’ 판정하면 문제는 심각해진다. 운이 없으면 FTC가 최대 4만2000달러(약 5000만원)까지 벌금을 매길지도 모른다. 소개 영상에 등장하는 유튜브 직원은 “우리는 법률 자문 서비스를 제공하지 않는다”고 미리 선을 그었다.

아동학대 논란 없앨 계기 삼아야

MCN(멀티채널네트워크) 다이아TV를 운영하는 CJ ENM 관계자는 “입지가 탄탄한 일부 유튜버는 광고 수입이 줄더라도 아동용 콘텐츠를 고수하겠다는 분위기지만 대다수 키즈 크리에이터는 채널 성격을 바꾸는 것을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다”고 전했다. 유튜버 B씨는 “유튜브에 의존해왔던 플랫폼을 이번 기회에 다른 채널로 분산할 생각”이라며 “수익을 낼 수 있는 여지가 점점 줄어들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고 착잡해했다.

한편에선 새 정책을 어린이를 돈벌이 수단으로 여기는 일부 유튜버의 행태를 바로 잡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비정부기구(NGO)인 세이브더칠드런이 지난달 ‘아이가 행복한 유튜브 촬영 가이드라인’을 제정하고 캠페인을 시작한 것도 이런 차원이다. 진작에 만들었어야 한다며 응원하는 목소리도 많다. 기상청은 올겨울이 예년보다 덜 춥겠다고 예보했지만 키즈 유튜버들은 태평양을 건너온 이른 찬 바람에 몸을 잔뜩 움츠리고 있다.

bon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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