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스스로를 '보물섬'으로 여기는 北·中의 착각

입력 2019-11-24 17:25   수정 2019-11-25 00:21

중국과 북한은 비교 대상이 아니다. 경제규모가 주요 2개국(G2) 반열에 오른 ‘세계의 공장’ 중국과 핵무기 개발로 국제사회의 제재 대상이자 기이한 3대 세습의 권력구조를 가진 북한을 일반적 기준으로 비교할 수는 없다. 그러나 중국의 ‘홍콩 사태’ 대응 방식과 북한의 금강산 시설 철거 통보의 근저에는 비슷한 정서가 깔려 있다.

지난 40년간의 국력 신장에 고무된 중국 지도부는 더 이상 홍콩의 ‘자유’를 방치할 수 없다고 판단해 홍콩에 대한 강공책을 결정했다. 북한은 미국과의 담판을 유리하게 이끈다면 경제력을 쏟아부은 원산 갈마해안 관광지구가 황금알을 낳아 줄 것으로 본다. 금강산의 남북협력 사업은 미련 없이 버려도 된다는 판단의 배경이다. 중국과 북한은 “우리가 문만 열어주면 이익을 탐하는 자들이 구름처럼 몰려들 것”이란 착각에서 스스로를 ‘보물섬’으로 여기는 공통점을 보인다.

중국은 6개월 이상 계속된 홍콩 시위사태에 대해 줄곧 강경한 입장이다. 홍콩 당국은 베이징 정부의 지지와 지침에 의해 시위 초기부터 폭력에 가까운 과잉진압으로 대응했다. 또 정체불명의 괴한들이 시위대를 폭행했고, 급기야 경찰은 실탄을 사용해 시위대를 자극했다. 중국 지도부는 자유 무역과 금융 중심지로서의 홍콩의 기능보다 정치적 제압이 더 중요했다.

중국 정부는 1997년 홍콩 반환 후 50년 동안으로 약속했던 일국양제(一國兩制)의 시한을 절반도 채우기 전에 ‘홍콩 길들이기’에 착수했다. 중국 경제의 성장으로 인해 이제 베이징과 상하이나 선전이 홍콩을 대체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배경이 됐다. 기술과 자본의 도입 창구로서 중국의 성공적 개혁개방을 뒷받침했던 홍콩을 ‘토사구팽’해도 된다는 판단에서 칼을 빼든 것이다.

베이징과 상하이, 선전은 중국을 대표하는 경제 중심이지만 법과 제도, 경제적 자유와 축적된 노하우에 기반을 둔 홍콩의 효율성과 가치를 대체하기 어렵다. 자본과 무역 중개기지로서 홍콩의 역할은 중국 경제의 취약점을 보완하고 있다. 그동안 하드 파워를 키울 수 있었던 중국에 작지만 효율적인 홍콩의 소프트 파워는 지속가능한 발전에 필수적이다.

북한의 금강산 시설 철거 통보도 그릇된 자신감에서 비롯했다. 북한은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미·북 관계 진전을 자신의 업적으로 포장하려는 상황을 간파하고, 올해 말로 시한을 정해 미국이 ‘새로운 계산법’을 제시해야 한다고 압박하고 있다. 미국이 대북 제재를 완화하면 원산 관광지구와 마식령 스키장, 금강산 등을 한데 묶어 국제적 관광 명소로 발전시킬 수 있다고 믿는다. 김정은의 치적이 된다. 계약 조건이나 대상이 제한될 수밖에 없는 남북 협력사업에 더 이상 매달릴 필요가 없다는 판단이다.

원산 관광지구의 성공 여부는 그 시설이나 국제사회의 대북 경제제재와는 다른 차원의 문제다. 북한에 억류됐다 송환된 뒤 사망한 미국인 대학생 오토 웜비어 사건을 아는 어느 누가 북한을 방문하고 싶겠는가. 잦은 탄도 미사일 시험과 핵문제로 인한 상황의 불확실성은 북한 관광산업의 발전을 막는 결정적 요인이다. 부가가치가 높은 관광산업이 필요로 하는 안전 및 편리성 보장과 복합적 사회문화 체험이 어려운 북한을 해외 관광객이 즐겨 찾기는 불가능하다. 이미 경험을 축적했고, 제한된 영역이지만 착실하게 성과를 거뒀던 남북 금강산 협력사업을 원산 관광지구 사업으로 대체하겠다는 계획은 허망하다. 분단의 아픔을 지닌 한국인이기에 금강산을 그리워했고, 불안감 속에서도 방문길에 나섰다.

중국과 북한이 비슷하게 보여주는 정책적 과오는 사실과 동떨어진 ‘보물섬 증후군’에 의한 판단 착오에서 비롯됐다. 이들은 기왕에 확보했던 자유로운 홍콩과 금강산 사업이라는 귀중한 자산을 정치적 탄압이나 미국과의 전략 게임의 불확실한 시도로 탕진할 수 있다는 위험을 과소평가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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