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대통령이 ‘아무도 흔들 수 없는 나라’를 강조하는 일이 잦아진 것은 일본과의 ‘과거사 전쟁’을 시작한 이후부터다. 광복절과 국군의 날에 이어 10월 10일 삼성의 디스플레이 신규투자 협약식에서도 “핵심 소재·부품·장비를 자립화해 누구도 넘볼 수 없는 제조 강국이 되자”고 했다. 국가 운영의 최고책임자가 어떤 대외환경에도 흔들리지 않을 ‘자립’과 ‘강국 도약’을 강조하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말이 아니라 실행이다. 한 국가의 경제력을 좌우하는 산업의 힘은 시장에서 뛰고 있는 기업들에서 나온다. 문 대통령이 말하는 산업 자립도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력을 갖춘 한국 기업이 얼마나 많이 나오느냐에 달렸다는 얘기다. ‘100% 토종 신약’으로 미국 시장을 뚫은 SK바이오팜 사례는 그런 맥락에서 시사하는 바 크다. 신약은 선진국이 장악하고 있는, 진입장벽이 매우 높은 산업이다. 지금까지 다국적 제약사 등의 도움으로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관문을 통과한 국산 신약은 여럿 있었지만 후보물질 발굴에서부터 임상, 허가에 이르기까지 신약 개발의 모든 단계를 국내 기업이 홀로 해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1993년 차세대 성장동력으로 신약을 선정하고 대덕연구원에서 연구개발(R&D)을 시작한 SK의 ‘27년 바이오 뚝심’이 만들어낸 쾌거다. 선진국의 벽을 넘어 신약 강국으로 가려면 이런 기업이 많이 나와야 한다. 지금의 반도체 등 주력산업도 산업의 역사를 새로 쓰겠다는 기업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산업의 자립을 말하는 정부는 기업의 이런 치열함을 갖고 있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정부의 차세대 성장동력은 정권이 교체될 때마다 달라졌다. 소재·부품·장비도 마찬가지였다. 1970년대부터 국산화 필요성이 본격적으로 제기됐지만 그때뿐이었다. 국산화율을 높이려면 한국 기업이건 외국인투자 기업이건 국내 생산이 많아야 하지만, 기업 환경이 이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도 의문이다. 지금처럼 최저임금 인상과 근로시간 단축 등으로 노동비용이 급증하고, 현실과 동떨어진 환경·에너지·안전 규제 등이 쏟아지면 국내에 남아있는 기업들도 해외로 나갈 수밖에 없다.
정부가 변해야 하는 것은 신산업에서도 마찬가지다. 인공지능·빅데이터·클라우드는 물론이고 원격의료· 차량공유 등에서 국내 기업들이 규제에 발목 잡히면 선진국 의존도가 높아질 것은 불 보듯 뻔하다. 아무도 흔들 수 없는 나라로 가려면 정부가 글로벌 흐름을 똑바로 읽고 시장을 억압하는 일부터 멈춰야 할 것이다. 국가경쟁력은 기업경쟁력에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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