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수돗물 신뢰회복, 지금이 골든타임

입력 2019-11-25 17:38   수정 2019-11-26 00:16

수돗물이 위기다. 지난 5월 말 발생한 인천 ‘적수(赤水·붉은 수돗물) 사태’가 전국을 뜨겁게 달궜다. 1990년대 낙동강 페놀 사태 이후 수돗물에 대한 지속적인 개선과 홍보 노력을 한순간에 무너뜨린 사건이었다. 더 큰 문제는 인천을 시작으로 서울, 포항 등 전국 10여 개 지방자치단체에서 비슷한 수질문제가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했다는 점이다.

최근 가정용 필터 사용이 보편화되면서 이 필터가 자연스레 수질센서 역할을 하고 있다. 적수 사태의 기폭제가 된 것이다. 이를 통해 그간 다소 등한시됐던 수돗물 공급관로의 체계적 관리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다시 일깨워줬다.

우리나라는 1908년 처음 수도를 도입한 이래 경제 성장과 함께 수도보급 확대 정책을 추진, 2017년 기준 보급률이 99.1%에 이르렀다. 수도 관로의 총연장은 약 20만9034㎞로 지구를 다섯 번이나 감을 수 있다. 이 중 21년 이상 된 수도관이 6만7676㎞로 32.4%에 이른다. 그간 대부분의 수도정책은 그러나 정수장 중심의 수돗물 관리에 집중하며 공급 과정의 수질관리에는 소홀했다. 적수 사태는 언제 어디서든 한 번은 터질 시한폭탄이었다.

관이 오래됐다고 해서 모두 노후관은 아니다. 적수 사태의 재발 방지를 위해서는 모든 관로에 대한 정밀조사를 통해 정확한 기초자료를 확보해야 한다. 이를 토대로 관 세척, 불량관 교체 등 효과적인 시설 개선이 이뤄져야 한다. 또 일부 지자체에서 시행했던 관로의 수질, 수량 및 수압을 실시간으로 감시하는 스마트관망관리 기술을 전국적으로 확대 적용할 필요가 있다.

시설관리도 문제지만 항상 사고의 중심에는 사람이 있다. 적수 사태의 핵심은 전문 인력 부족이다. 수도가 국가의 중요 인프라임에도 불구하고 수도 부서는 지자체 공무원이 늘 기피하는 한직이다. 정부는 2008년부터 ‘정수시설운영관리사’ 자격을 도입했고, 정수장 규모별로 자격증을 보유한 직원이 일정 수준 이상 근무하도록 했다. 그러나 자격증을 취득해도 실질적인 혜택이 미미하다 보니 자격증을 따지 않고 있다. 이참에 공무원들이 수도 분야 자격증을 취득하고 수도 부서에 근무하기를 희망할 수 있도록 처우개선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

아울러 물은 공공재이고 대체재가 없으므로 소비자인 국민과 공감하는 노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동의보감에서 물을 정화수(井華水), 한천수(寒泉水) 등 서른세 가지로 분류하고 있는 걸 보면 우리는 역사적으로 물에 대해 깐깐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그래서 한 번 무너진 신뢰는 회복하기가 더욱 힘들다. 경제용어 중 ‘시스루 마케팅(see-through marketing)’이 있다. 제품 생산 과정을 소비자에게 공개해 신뢰를 회복하고, 제품의 인지도와 충성도를 제고하는 방법이다. 이제 수돗물평가위원회 등과 같은 전문가 중심의 관리를 넘어 일반 시민의 고충까지도 함께 고민하는 소박하고 진정성 있는 관리 체계가 필요한 시점이다.

시민들에게 먼저 다가가는 것도 하나의 방안이다. 우리나라 국민이 수돗물을 직접 마시는 비율은 2017년 기준 7.2%로 선진국에 비해 매우 낮은 수준이다. 수돗물에 대한 신뢰가 낮기 때문이다. 2008년 도입해 확대 운영하고 있는 ‘수돗물 안심확인제’는 수돗물 불신을 해소할 수 있는 좋은 제도다. 수도 업무 종사자들이 가정을 방문해 수질을 분석하고, 그 결과를 육안으로 확인해준다. 또 즉석에서 수돗물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해줌으로써 수돗물 신뢰 회복에 많은 기여를 하고 있다. 수돗물품질확인제를 모든 지자체가 의무적으로 실시하도록 제도화해야 한다.

지금처럼 수돗물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컸던 적은 없다. 인천 적수 사태를 반면교사로 해 수도분야 혁신의 디딤돌로 삼아야 할 때다. 지금이 수돗물 신뢰를 회복할 수 있는 마지막 골든타임일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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