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안포 도발 실시간 탐지하고도…軍, 北 발표 때까지 침묵 '논란'

입력 2019-11-26 17:21   수정 2019-11-27 01:28

군 당국이 지난 23일 북한이 감행한 창린도 해안포 사격을 탐지하고도 이를 공개하지 않다가 이틀 뒤인 25일 북한 관영매체 보도가 나온 뒤에야 ‘늑장 발표’를 해 논란이 일고 있다. 북한 동향을 정밀 분석 중이었고, 대북 감청 정보 보안을 위해 공개하지 않았다는 게 군의 해명이다. 하지만 어떤 이유에서든 서해 남북한 접경지역에서 발생한 군사 도발 행위에 즉각적으로 대응하지 않은 데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軍 “북한 사격훈련 23일 오전 탐지”

최현수 국방부 대변인은 26일 정례 브리핑에서 북한의 해안포 사격 시점에 대해 “우리 군이 파악한 것은 23일 오전 중”이라며 “저희가 (관련 동향을) 분석하는 중에 북한 매체의 발표가 있었고, 그걸 확인한 다음에 즉각적으로 유감 표명을 했고 항의한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25일 조선중앙통신 등 북한 관영매체들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백령도 북동쪽에 있는 창린도 방어부대에서 직접 해안포 사격 훈련을 지도했다고 보도했다. 보도가 나오자 국방부는 “북한이 9·19 군사합의를 위반했다”고 유감의 뜻을 발표했다. 하지만 북한의 해안포 사격을 언제 인지했는지에 대해선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아 은폐 의혹까지 제기됐다.

최 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에서 북한의 사격 훈련 시점을 뒤늦게 공개한 이유에 대해 “저희가 그런 것을 말씀드릴 때는 시기를 보고 말씀드린다”며 “북한 동향에 대해서는 파악하고 있었고, 정확한 판단을 내리기 위해 분석 중이었다”고 재차 강조했다. 군 관계자도 이날 기자들과 만나 “23일 오전 서해상에서 미상의 음원을 포착해 분석 중이었다”고 설명했다. 다만 해안포의 종류나 제원에 대해선 여전히 함구하고 있다.


“군 당국 스스로 논란 자초”

북한이 해안포 사격 훈련을 한 23일은 북한의 연평도 포격 도발이 일어난 지 9년째 되는 날이었다. 북한이 2010년 연평도에 170여 발의 포탄을 발사해 우리 측 민간인 2명이 사망했다. 북한이 우리 정부와 군을 자극하기 위해 연평도 포격 도발일을 일부러 골라 사격 훈련을 했다는 분석도 가능하다.

군이 23일 북한의 해안포 사격 훈련을 탐지하고도 이틀 이상 공개하지 않은 데 대해 군 안팎에서 비판이 제기된다. 한 전문가는 “군사 대치 지역에서 발생한 북한의 군사 도발 행위를 공개하지 않은 것 자체가 문제”라며 “사실 여부를 떠나 군 스스로 논란을 자초했다는 지적을 피할 수 없다”고 말했다.

미·북 비핵화 실무협상을 앞둔 상황에서 분위기 조성을 위해 의도적으로 북한의 ‘9·19 군사합의 위반’ 언급을 미룬 것 아니었냐는 해석이다. 또 한·아세안(동남아국가연합) 특별 정상회의 개막(24일)을 의식해 적극 대응하지 않은 것 아니냐는 비판도 나온다.

北에 항의문 보낸 국방부

국방부는 23일 김정은이 창린도를 방문해 해안포 사격 지도를 한 것과 관련해 이날 서해지구 군통신선을 이용해 북한 측에 항의문을 보냈다고 밝혔다. 북측이 이에 어떤 반응을 보였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항의문은 남북 접경지역 일대에서의 군사적 긴장을 고조시킬 우려가 있는 모든 군사적 행위를 즉각 중단하고, 비슷한 사례가 재발하지 않도록 9·19 군사합의를 철저히 준수할 것을 촉구하는 내용인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이 같은 소극적 대응으로는 북한의 예측불가능한 군사 도발을 막는 데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빈센트 브룩스 전 한미연합사령관은 25일(현지시간) 미국의소리(VOA) 방송에서 “북한의 최근 해안포 사격 훈련은 남북군사합의를 명백히 위반한 첫 사례”라며 “북한과의 외교적 대화를 위해 중단했던 한·미 연합훈련을 재개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최 대변인은 “국방부는 북한의 군사합의 위반이 발생하면 대북 전통문, 구두, 통신 등을 통해 지속해서 제기할 예정”이라며 “북측이 군사합의를 충실히 이행하고 있는지 정찰 활동 및 이행 실태 확인을 계속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정호 기자 dolp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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