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초연금, 2.3兆 늘리고도 '바닥'…예비비서 1253억원 끌어다 썼다

입력 2019-11-27 17:32   수정 2020-10-25 18:47


65세 이상 노인에게 지급하는 기초연금의 예산이 부족해지자 정부가 예비비를 헐어 1253억원을 증액한 것으로 27일 확인됐다.

정부는 이날 국무회의를 열어 최저임금 인상으로 경영이 어려워진 영세업체를 지원하는 일자리안정자금도 예비비에서 985억원 충당하기로 의결했다. 문재인 정부 들어 크게 확대된 현금성 복지 사업이 줄줄이 예산 부족 사태에 직면하는 양상이다.

기획재정부와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정부는 올해 책정한 기초연금 예산 11조4952억원이 조기 소진될 것으로 예상되자 지난 9월 예비비에서 1253억원을 빼내 지원했다. 예비비는 대형 재난 같은 예측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질 때를 대비한 일종의 ‘국가 비상금’이다. 올해 기초연금 예산을 전년보다 2조2512억원 늘렸는데도 돈이 모자라자 비상금을 헐어 쓴 것이다. 복지부 관계자는 “노인 인구 비율이 예상치를 웃돌아 지방자치단체 국고 지원금을 늘려줘야 했다”고 설명했다. 정부는 지난해에도 기초연금 수요 예측을 잘못해 예비비 1211억원을 썼다.

전문가들은 고령화 속도가 점점 빨라지면서 기초연금 등 관련 복지사업 규모가 예산을 초과하는 상황이 매년 반복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그럼에도 정부는 지원 규모를 계속 늘리고 있다. 소득 하위 70%에게 지급하는 기초연금은 올 4월 월 최대 금액(하위 20%)이 25만원에서 30만원으로 늘어난 데 이어 최대 금액 지급 범위가 2020년 하위 40%로, 2021년에는 하위 70%로 확대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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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산 퍼준다니 너도나도 "돈 달라"…'밑 빠진 독' 된 현금 복지사업

청년을 신규 채용하는 중소·중견기업에 1인당 연 900만원을 지원하는 ‘청년추가고용장려금’ 예산은 작년 3308억원(집행액 기준)에서 올해 6735억원으로 두 배 이상 늘었다. 하지만 ‘공짜 지원금’을 받으려는 기업들이 너도나도 신청서를 내면서 5개월 만에 예산이 동이 났다. 정부는 부랴부랴 추가경정예산으로 2162억원을 증액했으나 그마저도 지난달 바닥났다.

올해 본예산 편성 때 2조2512억원을 늘렸던 기초연금(총 예산 11조4952억원)은 지난 9월 ‘국가 비상금’인 예비비를 1253억원 추가 투입했다. 일자리안정자금(2723억원), 구직급여(7279억원), 청년내일채움공제(3581억원) 등도 수천억원을 증액하고도 올해가 가기 전에 예산이 소진됐다. 이들 사업은 문재인 정부 들어 신설되거나 대폭 확대된 것으로, 지원 조건 등이 느슨해 ‘퍼주기’ 정책이란 지적이 많았다.

전문가들은 이런 관대한 제도 설계가 개인 및 기업의 신청 폭주를 불러오고 결국 예산 펑크로 이어졌다고 지적했다. 지금이라도 현금성 복지 사업을 손질하지 않으면 재정 부담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질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예고된 복지 사업 예산 펑크

정부의 현금성 복지 사업은 수혜자의 도덕적 해이를 키우고 국가 재정 부담이 커서 제한적으로 운용하는 것이 원칙이다. 빈곤층·장애인 등 취약계층에 한정하거나 인건비 지원의 경우 고용·투자를 늘리는 기업 등으로 지원 조건을 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하지만 지난해 신설된 일자리안정자금은 인건비 지원임에도 이런 조건 없이 지원한다. 30인 미만 영세업체에서 일하는 근로자가 월급 210만원 이하를 받으면 1인당 월 13만원씩 지급된다. 여기에 건강보험료를 최대 60% 깎아주는 파격 혜택까지 붙는다. 제도 시행 후 1년8개월간 깎아준 건보료만 5147억원에 이른다. 이런 탓에 올해 들어 10개월 만에 324만 명의 신청자가 몰렸다. 당초 예상(238만 명)을 훌쩍 뛰어넘었다.

청년추가고용장려금은 지원 요건이 관대하다는 지적이 많다. 원래는 세 명을 고용해야 한 명분 인건비를 지원했는데 작년 하반기부터 신규 채용자는 모두 지원하는 식(30인 미만 기업 기준)으로 크게 완화됐다.

기초연금은 지원범위(소득 하위 70%까지)가 너무 넓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여유 있는 노인까지 지원해 불평등 해소 효과가 낮다”고 지적할 정도다. 실업자에게 주는 구직급여는 하한액이 최저임금의 90%로 높아 재취업 의욕을 떨어뜨린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는다.

퍼주기 복지 정책, 실효성도 낮아

경기 침체가 복지 예산 펑크에 일조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현재 경기를 종합적으로 보여주는 ‘동행지수 순환변동치’는 지난해 12월 약 3년 만에 100 아래로 떨어지더니 지난달 99.5까지 하락했다. 이 지수는 100을 기준으로 그 이상이면 경기 호황, 미만일 때는 불황으로 분류된다.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최저임금 영향이 큰 숙박·음식업 등에서 경기가 계속 나빠지자 ‘더는 버틸 수 없다’며 정부에 손을 벌리는 사업주가 늘어난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퍼주기 정책이 늘고 있지만 정책 효과가 나는지는 미지수다. 작년 일자리안정자금 지원을 받은 업체의 평균 근로자 수는 2017년 5.14명에서 작년 5.07명으로 줄었다. 안정자금 대상 직원은 고용을 유지하지만 그렇지 않은 직원은 내보내는 경우가 많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청년추가고용장려금 지원 대상인 300인 미만 기업의 신규 채용은 상반기 기준 지난해(57만9000명)와 올해(58만5000명) 모두 2017년(59만6000명) 수준에 못 미쳤다. 장려금을 받은 한 중소기업 대표는 “애초에 계획돼 있는 채용을 하면서 ‘이왕이면 정부 돈을 받자’고 신청하는 것이지 장려금 때문에 추가 채용을 하겠다는 기업은 거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기초연금도 노인 빈곤 완화에 기여를 못 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지난해 2분기 노인 빈곤율은 58.7%로, 전년 동기(56.4%)보다 악화됐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정부가 강조하는 ‘사람에 대한 투자’는 개인의 생산성과 능력을 키우는 데 이뤄져야지 묻지마 식으로 퍼주기만 늘어서는 밑 빠진 독에 물 붓기가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서민준 기자 morandol@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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