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증특례라고 하지만 대부분의 서비스가 모래주머니가 주렁주렁 달린, 극히 제한적인 범위에서 허용되고 있다. 현대차 대형 승합택시만 해도 특정 지역 반경 2㎞ 내에서만 운행이 가능하다. ‘쏠라티’를 개조한 12인승 6대로 최대 100명의 고객을 대상으로 영업할 수 있다. 공유숙박도 마찬가지다. 세입자는 집 주인, 공동주택은 이웃의 동의를 얻어야 하고 규모는 4000명으로 한정됐다. 신사업이 자유로운 선진국과는 출발부터 다르다.
규제 샌드박스를 적용받아도 또 다른 제한조건과 불확실성이 기다리고 있다. 관련 법령이 금지하는 서비스의 경우 실증특례는 최대 4년(최초 2년, 2년 연장 가능)까지만 가능하다. 이 기간 동안 안전성·혁신성이 미흡하다고 판단되면 사업은 그대로 종료된다. 서비스 자체의 문제가 아니어도 사회적 논란이 제기되면 부정적 평가를 받을 가능성이 크다. 안전성·혁신성이 입증되더라도 법령 정비는 또 다른 과제다. 규제 샌드박스를 통해 시장에서 제대로 사업을 하기까지 ‘산 넘어 산’인 형국이다.
우여곡절 끝에 정식 허가를 받고 시장에 진입해 소비자의 호응을 얻더라도 변수가 있다. ‘타다’처럼 택시업계가 거세게 반발하면 여야 정치권이 영업을 사실상 중단시키는 여객자동차운수사업법 개정안 처리에 합의한 것과 비슷한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 갈등을 조정하고 방지한다는 명분으로 아예 신사업의 문을 닫아버리는 게 한국의 정치권이다. 벌써부터 택시업계 일각에서는 현대차의 대형 승합택시를, 기존 숙박업계는 위홈의 공유숙박 실험을 주시하고 있다는 얘기가 들려온다. 이런 식으로는 규제 샌드박스를 백날 적용해 봐야 달라질 게 없다.
정부가 규제 샌드박스 적용 대상을 넓히고 있다지만, 거꾸로 보면 모호하거나 불합리한 법령, 신사업을 금지하는 법령이 그만큼 널렸다는 얘기다. 승차공유는 여객운수법, 공유숙박은 관광진흥법, 원격의료는 의료법, 빅데이터는 개인정보보호법에 막혀 있는 게 그렇다. 이런 법령을 그대로 두는 한 규제 샌드박스는 규제 개혁을 피해가는 수단이 되기 십상이다.
국내 기업들이 규제 샌드박스를 통해 신사업을 테스트하는 사이 아예 규제가 없어 시장 출시가 곧바로 가능한 선진국은 물론이고 중국, 동남아 기업들은 저만치 앞서가고 있다. 이대로 가면 한국은 신사업의 불모지로 전락할지 모른다. 더 늦기 전에 관련 법령을 뜯어고쳐 규제를 제대로 풀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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