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명철의 한국, 한국인 재발견] 고구려에 밀려 벼랑 끝에 선 백제…中·日과 해양교류로 강국 부활

입력 2019-11-29 17:23   수정 2019-11-30 00:15


500년 왕국(수도 한성시대)이던 백제는 고구려의 급습을 받아 수도는 물론 영토의 절반 이상을 빼앗기고 임금은 전사했다. 하지만 백제는 멸망하지 않았다. 부흥에 성공해 200년 가까이 국제적이고 강력한 나라를 이뤘다. 그렇다면 백제인들은 어떤 국가정책을 추진했고, 절체절명의 위기를 극복한 지혜와 힘은 어디에서 왔을까. 해양활동과 해양력에 초점을 맞춰 살펴본다.

강국으로 부상한 웅진시대

구원병을 구하러 신라로 떠났던 백제 왕자 문주는 수도를 금강 중류의 웅진(지금의 공주)으로 정하고 재건을 도모했다. 하지만 토착세력의 저항이 심했고 송나라 사신 파견마저 고구려의 해양 봉쇄로 실패했다. 이렇게 위축되고 국제적으로 고립된 상황에서 문주는 왜국으로 파견됐다 귀국한 동생 곤지와 함께 개혁을 추진했으나 토착세력들에 살해당하고 말았다.

이어 등장한 동성왕은 위기를 수습하고 고구려의 군사적인 압박과 외교 방해를 이겨내기 위해 중국지역과 교류를 추진했다. 484년 양쯔강 이남의 남제에 사신선을 파견했지만 또다시 고구려 수군에 의해 저지당했다. 그러나 곧 해양력을 강화해 양(梁)나라, 그 뒤를 이은 진(陳)나라와 외교, 무역, 문화교류 등을 활발히 하면서 강국으로 부상했다.

<삼국사기>와 <자치통감>에는 이 시대에 북위가 백제를 공격했으나 패했다는 기록이 있다. 또 <남제서>는 490년 위나라가 수십만 명으로 백제를 공격했지만 크게 패했고, 동성왕은 공훈을 세운 백제의 장군들에게 왕이나 후, 태수 등의 관작을 줄 것을 남제에 요구했다고 기록했다. 태수직을 요구한 광양(廣陽) 광릉(廣陵) 청하(淸河) 등은 중국의 해안지역으로 추정된다. 또 ‘목간나(木干那)’라는 인물은 성과 배를 격파했는데, 그렇다면 전장은 불분명하지만 대규모 해전도 있었음이 분명하다.

<주서> 백제전에는 백제가 진(晋)나라부터 송·제·양나라 때까지 양쯔강의 좌(左)에 있었다고 기록됐으며, <북사> 백제전에도 비슷한 내용이 있다. <삼국사기> 최치원전에는 그가 당나라 관리로서 작성한 공문서에 ‘고(구)려, 백제가 전성할 때는 강병이 100만 명이며, 남으로 오(吳)와 월(越)을 침범하고, 북으로 유·연·제·노(幽·燕·齊·魯)를 흔들었다’고 쓴 글이 실려 있다.

이런 기록들은 백제(웅진시대)가 중국 해안지방에 상당 기간 진출했다는 주장의 근거가 된다. 물론 중국의 남북 분단이라는 냉전 상황과 고구려의 영향력, 남조 계통의 사서에만 기록이 된 편향성 등을 고려하면 완전한 사실로 수용하는 데는 약간 무리가 있다. 앞으로 관련된 유적과 유물 등의 연구가 더 필요하지만, 백제가 해양을 무대로 영향력을 끼쳤던 국가임은 분명하다.


일본 진출로 이어진 해양력

동성왕은 자원을 확보하고, 무역을 활성화하고, 삼국 간 경쟁을 유리하게 이끌기 위해 더 적극적으로 일본열도에 진출했다. 우선 498년에는 조공체제에서 이탈하려는 탐라(제주도)에 압박을 가해 이를 복속시켰다. 탐라는 남중국, 한반도, 일본열도로 구성된 해상네트워크의 중핵이며 항법상으로 일본열도 진출에 유리한 지역이기 때문이다.

백제와 왜국이 정치적으로 얼마나 특별한 관계인가를 알려주는 유적이 있다. 1971년 충남 공주시 송산면에서 고분이 발굴됐다. 양나라 영향을 받은 벽돌무덤에서는 ‘사마왕(斯麻王)’이라고 새겨진 묘지석과 함께 금으로 제작한 관식을 비롯 금과 은으로 만든 각종 공예품 등 4600여 점의 유물이 쏟아져 나왔다. 무덤의 주인은 무령왕(재위 501~523)이다. 그는 규슈 북부 가카라시마(加唐島)에서 태어나 왜국에서 성장하다가 귀국해 25대 임금이 됐다. 그와 왕비의 시신을 모신 관은 일본에서 자라는 금송(金松)으로 제작됐다.

성왕은 538년 사비(지금의 부여)라는 항구도시로 천도하면서 해양 활동망을 더 튼튼히 구축했고, 왜국에 진출했다. 오사카부 모즈에 있는 오스카(大塚)에선 300개의 철검이 출토됐다. 이곳에는 지금도 구다라촌(백제촌)과 구다라강(백제천)이 있는데 과거에는 와니(王仁)씨, 후네(船)씨, 쓰(津)씨, 후지이(葛井)씨 등 백제계 씨족이 많이 거주했던 지역이다. 그리고 6세기 중반에 이르면 친백제계인 소가(蘇我)씨가 불교가 공인되는 과정에서 신흥세력으로 떠올랐다. 쇼오토쿠 태자가 실권을 장악해 백제의 영향력은 더 강력해졌다. <일본서기>에는 577년 백제왕이 경론 몇 권, 율사, 선사, 비구니, 주금사, 조불공, 조사공 6명과 함께 불상을 보내왔다고 기록돼 있다.

뛰어난 조선술과 항해술

중국의 <북사> <수서>와 같은 사서는 “백제에 왜와 중국사람이 많이 있었다”고 기록했다. 이렇게 백제를 융성시키고 국제적인 위상을 강화시킨 해양활동과 해양력은 어느 정도였을까.

웅진은 금강의 하항도시지만 해양으로 진출하는 데는 다소 불편했다. 천도한 사비는 강을 끼고 있으면서 해양과 가깝게 연결되는 일종의 ‘강해도시’였다. 20세기 초까지도 큰 배들이 정박하는 큰 나루(구드래 나루)였다. 필자가 1979년 뗏목으로 금강을 탐사할 때도 부여까지 밀물의 영향이 미쳤다.

항해술과 조선술도 발달했다. 백제 선박들은 고구려의 해상권 통제와 북위의 견제 때문에 난도가 높은 항해를 할 수밖에 없었다. 즉 금강 하구와 영산강 하구 등을 출항해 황해 남부를 횡단하거나, 황해 중부를 횡단하다가 북풍을 이용해 양쯔강 하구로 진입했다. 비록 구체적인 자료나 실물 증거가 빈약하지만 우수한 원양용 선박을 보유했음이 분명하다. 다행히 북위군과 싸울 때 ‘방(舫)’이라는 큰 배를 동원해 승리한 기록이 남아 있다. 또 무령왕 시대에 교류한 양나라는 2만 척의 ‘대선’을 보유했고, 페르시아까지 원양무역을 했으므로 그런 선진 조선술을 수용했다고 판단된다.

일본열도로 갈 때 사용한 항로는 상대적으로 쉬웠다. 주로 전라도 해안에서 출항해 제주도를 항해물표로 활용하면서 해류와 바람 등을 이용하면 고토(五島)열도 근해에 도착할 수 있다. 탐라 사람들도 이 항로를 이용해 일본에 갔고, 필자도 2003년 뗏목으로 제주도를 출항한 지 14일째에 고토열도에 도착했다. 백제 선박들은 이 해역에서 규슈 북부인 사가현에 상륙하거나, 아리아케해(有明海)로 들어가 나가사키현 구마모토현 등에 상륙한 다음 강을 거슬러 올라가 정착했다. 그 증거 가운데 하나가 5세기 전반 기구치(菊池)지역에서 만들어진 후나야마(船山)고분이다.

전장 46m인 이 고분에서는 청동거울, 갑옷 등 92종의 유물이 출토됐다. 특히 금동관, 금동관모, 금동신발 등은 의미가 크다. 왜냐하면 공주 무령왕릉이나 익산 입점리 고분, 나주 복암리 고분에서 출토된 것들과 동일하거나 비슷하기 때문이다. 또 85㎝의 큰 칼에는 백제왕이 신속(복속)의 표시로 준 위세품임을 알 수 있는 내용이 새겨져 있다. (북한 학자 김석형 주장)

국내 안정과 해외 진출 병행

일본열도에 온 백제 선박의 크기와 성능을 알려주는 기록이나 유물은 없다. 다행히 일본의 토기나 벽화 등에 고대 배의 그림이 많다. 특히 규슈의 다케하라(竹原)고분에는 기마무사와 배가 그려졌고, 근처의 메즈라사키(珍敷)고분에도 비슷한 그림이 있다. 이를 보면서 백제 선박의 형태를 추측하고 전투선도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 고분들의 위치를 고려하면 백제계의 해양활동과 깊은 관계가 있다. <일본서기>에는 650년과 662년, 각각 왕명으로 안예국(安藝國)에 ‘백제선’ 두 척을 건조하게 했다는 기록이 나온다. 그만큼 일본열도에서는 우수한 선박으로 인정됐다는 증거다.

멸망 위기에 처했고 내부 분열도 심각했던 백제는 현실적이고 전략적인 판단을 했다.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농업과 함께 해양을, 국내 안정과 함께 과감한 해외 진출을 병행하는 정책을 택했다. 이를 위해 해양력을 강화했다. 그리고 해양을 최대한 이용해 분단된 중국과는 외교 협력과 무역, 문화 교류를 했고 일본열도에는 정치적으로 진출해 국가를 발전시키고 위상을 높이는 원동력으로 삼았다.

윤명철 < 동국대 명예교수·한국해양정책학회 부회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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