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리츠화재의 '역발상'…설계사 늘려 불황 탈출

입력 2019-12-02 17:43   수정 2019-12-03 00:48


저금리에 국제회계기준 변경, 자동차보험 부진까지. 손해보험업계는 악재투성이다. 비용 감축은 피할 수 없는 과제다. 설계사를 점차 줄여나가는 이유다. 자산 기준 업계 5위인 메리츠화재는 반대로 움직였다. 올 들어서만 1만 명 넘는 설계사를 채용했다. 전속 설계사 보유 기준으로는 삼성화재를 제치고 1위로 올라섰다.

메리츠화재의 지난 6월 말 기준 설계사는 1만9774명. 삼성화재(1만8470명)보다 1000명 이상 많다. 10월엔 한 달 동안 1400명 이상의 설계사가 한꺼번에 메리츠화재로 넘어오기도 했다. 월간 기준 역대 최대다.

메리츠화재는 능력 있는 설계사를 끌어들일 때 두 가지 카드를 제시한다. 하나는 성과에 따른 확실한 보상. 업계 최고 수준의 수수료를 약속한다. 두 번째는 파격적인 인사 시스템. 메리츠화재는 대졸 공채 직원들이 독식하던 본부장 자리를 100% 설계사로 채웠다. 김용범 메리츠화재 부회장은 지난달 5일 사내 행사에서 “회사 내 신분제를 파괴하겠다”는 선언까지 했다.

설계사들의 영업력은 실적으로 이어졌다. 메리츠화재는 지난 상반기 당기순이익 1361억원을 기록했다. 상위 5개사 중 유일하게 전년 동기 대비 증가했다. 김 부회장은 “설계사가 정식 임원에 오를 수 있는 승진 트랙도 마련했다”며 “주주 앞에서 능력을 검증받은 설계사는 최고경영자(CEO)가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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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리츠화재 인사 실험
"설계사, 능력 검증되면 CEO 될 수 있다"


보험사들이 저금리와 국제회계기준 변경, 포화상태에 들어간 보험시장 등을 견디다 못해 비용 절감에 나서고 있다. 가정 먼저 한 일은 설계사 수를 줄이는 일이다. 일자리를 강조하는 정치권의 눈치를 보느라 급속하게 줄이진 못하지만 꾸준히 설계사 지원 비용 등을 감축하고 있다.

메리츠화재의 역발상은 여기에서 시작됐다. 어려운 경영상황을 돌파하기 위해선 비용이 아니라 보험사의 마진을 줄여야 한다고 판단했다. 설계사를 늘리고 보험료를 낮춰야 치열한 경쟁 속에서도 규모를 키울 수 있다는 게 메리츠의 전략이다.


한 달에 1000명씩 유입

올 들어 10월 말까지 메리츠화재 설계사로 유입된 인원은 총 1만575명이다. 한 달에 평균 1000명 이상씩 메리츠화재 울타리 안으로 들어왔다는 뜻이다. 메리츠화재의 지난 6월 말 기준 설계사는 1만9774명, 업계 1위 삼성화재(1만8470명)를 처음 앞질렀다. 메리츠화재는 올해 전체 설계사가 2만 명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설계사들이 메리츠화재로 모이는 가장 큰 이유는 확연하게 차별화된 성과보수 체계다. 메리츠화재는 장기인(人)보험 상품을 팔면 1100%의 수수료를 지급한다. 월납 보험료 10만원짜리 상품을 팔면 수수료를 110만원 받는다는 뜻이다. 보험업계 평균 수수료 수준인 850~1000%를 훨씬 웃돈다. 장기인보험이란 질병과 재해를 1년 이상 장기간 보장하는 상품을 말한다. 건강·어린이·간병보험 등이 대표적이다. 메리츠화재의 신규 계약 중 70%를 차지한다.

장기인보험이기만 하면 상품 종류와 보험료 수준에 상관없이 1100%를 일괄 지급하는 것도 다른 보험사와 차이나는 부분이다. 보험사들은 상품별 또는 보험료 구간별로 수수료를 다르게 책정한다. 설계사들은 자신이 상품을 팔았다 하더라도 월말에 받을 급여가 얼마인지 예상하기 힘들다. 메리츠화재의 한 설계사는 “받을 수수료가 얼마인지 쉽게 예상이 되니 영업에 더 집중할 수 있다”며 “어떤 상품을 더 팔아야 하는지 전략을 세우기도 좋다”고 말했다.

“설계사도 정식 임원 된다”

보험업계에서는 메리츠화재가 설계사들을 무한경쟁 상황으로 몰아넣고 있다고 비판하기도 한다. 설계사들이 수수료만 보고 영업을 무리하게 하면 부실계약이 나올 가능성이 높다는 우려도 있다. 가입자가 계약을 빨리 깨거나 무리하게 보험금 지급을 요구할 수 있다는 뜻이다.

메리츠화재 관계자는 “설계사의 성과를 정당하게 평가해주는 시스템을 만든 것일 뿐”이라며 “회사에 기여한 만큼 승진과 보상을 보장해주는 게 당연한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메리츠화재는 설계사들이 정식 임원에 승진할 수 있는 길도 열어놨다. 다른 보험사들은 ‘명예상무’ ‘명예이사’라는 이름만 붙일 뿐 설계사를 경영진 회의에 참석시키진 않는다. 반면 메리츠화재는 설계사가 임원으로 승진할 경우 다른 임원과 마찬가지로 주주 앞에서 성과를 공유할 기회를 제공할 방침이다. 최고경영자(CEO) 후보군에 들어갈 자격도 주어진다.

신규 계약 및 계약유지율 모두 1위

설계사에 대한 파격적인 지원은 경영 성과로 이어지고 있다. 메리츠화재는 손보사들이 주력하고 있는 장기인보험 시장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장기인보험은 보장 구조가 복잡하고 이해하기 어려워 설계사들의 역할이 중요하다. 반면 다른 보험에 비해 보험료를 받는 기간이 상대적으로 길어 보험사의 안정적인 수익기반이 된다.

지난 10월 기준 메리츠화재의 장기인보험 시장점유율(신계약 보험료 기준)은 23.3%로 업계 1위다. 연간 평균으로는 22% 수준으로 삼성화재와 1, 2위를 다투고 있다. 계약유지율도 업계 1위다. 25회차 기준 71.3%에 달한다. 월납 보험료를 25번째 낸 사람들, 즉 보험계약을 2년 이상 유지한 가입자 비중이 그만큼 높다는 뜻이다. 메리츠화재 관계자는 “보험계약이 필요한 사람에게 적정한 수준의 보험료를 받고 팔았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박신영 기자 nyuso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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