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인권전문가 강경화'가 등장해야 할 때

입력 2019-12-03 17:56   수정 2019-12-04 00:12

왕이 중국 국무위원 겸 외교장관이 4일 방한한다. 단독 방문으론 5년여 만이다. 외교가에선 강경화 외교부 장관과 왕 장관의 만남을 주목하고 있다. 사드(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 배치 이후 풀리지 않은 한·중 갈등을 해소할 계기가 마련될 것이란 기대에서다. 중거리 미사일 배치 등 한·미·중 3국 간 얽힌 난제들을 어떻게 풀어나갈지도 주목된다.

외교가의 또 다른 관심은 중국 내 탈북자 및 인권 문제가 거론될지에 쏠리고 있다. 유엔 인권최고대표사무소(OHCHR) 부대표 출신인 강 장관은 그동안 인권 전문가로서의 존재감을 잃었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북한 인권 문제와 탈북자 북송 문제 등에 소극적으로 대처해왔기 때문이다. 강 장관은 “유엔에서 인권을 다루는 입장과 외교장관으로서 인권을 다루는 시각이나 위치는 매우 다르다”는 말로 피해왔다. 이 때문에 한때 미얀마의 민주투사였다가 소수민족인 로힝야족 학살엔 눈감은 아웅산수지 미얀마 국가고문과 다를 바 없다는 비판도 받았다.

강 장관은 유엔 근무 당시 세계 곳곳의 반인권 실태를 고발해왔다. 일본과의 관계 악화를 각오하면서 한 세기 전 일어난 강제징용 배상 문제에서 물러서지 않는 것도 인권을 최우선 가치로 삼았기 때문이다. 수단 군부의 시위대 무력진압, 콜롬비아 테러 사건처럼 한국에서 수천㎞ 떨어진 곳에서 일어난 일들을 규탄했던 것도 같은 이유에서였을 것이다.

이번 한·중 외교장관 회담은 인권 전문가로서 강 장관의 존재감을 보여줄 기회다. 더구나 베트남과 중국 국경에 억류된 탈북자들의 안전 문제는 보편적 인권을 떠나 대한민국 외교부 장관으로서도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사안이다. 중국에서 인신매매와 성적 착취를 당하고 있는 탈북 여성의 인권 문제는 강 장관이 유엔에서 전문으로 삼았던 ‘여성 인권’ 분야다. 한 탈북민 인권단체 관계자는 “인권 전문가라는 이력이 부끄럽지 않으려면 이를 외면해선 안 된다”고 했다.

홍콩 시위와 신장위구르자치구의 직업훈련소에서 벌어지고 있는 인권 침해에도 한국만 침묵하고 있다. 영국 프랑스 미국 독일이 중국과의 관계 악화를 두려워했다면 정부 차원에서 목소리를 내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인권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아온 모테기 도시미쓰 일본 외무상조차 지난주 왕 장관을 만난 자리에서 공개적으로 우려를 나타냈다. 반면 한국 정부는 유구무언이다. 인권활동을 자랑스러운 경력으로 삼는 강 장관이라면 단호한 목소리를 내야 하지 않을까. 강 장관이 중국 내 인권 문제엔 눈감는다면 정치적 필요에 따라 원하는 것만 취하는 ‘뷔페식 인권’이냐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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