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미에 감춰진 추하고 기묘함…끌림의 상상력으로 되살렸죠"

입력 2019-12-04 17:06   수정 2019-12-05 00:31

서양화가 문성식 씨(39·사진)는 2016년 여름 서울 종로 5가에서 장미를 구입해 부암동 작업실에서 키우며 세세하게 관찰했다. 장미에 꼬이는 벌레와 곤충, 꽃 주변에서 서성이는 나비나 새들을 목격했다. 마치 세상의 축소판 같았다. 그러면서 자신이 왜 장미에 갑자기 꽂혔는지, 꽃을 들여다보고 있는 이유는 무엇인지 자문했다. 아름답고 익숙한 꽃이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우리가 피상적으로 알던 것과는 다른 면이 많다는 것을 깨달았다. 문씨의 작업을 관통하는 주제가 ‘끌림’인 이유도 여기에 있다.

문씨는 서울 소격동 국제갤러리에서 이달 31일까지 여는 개인전에 사물에 대한 끌림을 과슈(물과 고무를 섞어 만든 불투명한 수채 물감), 유화물감, 젯소(석고와 아교 혼합재료), 연필 등 다양한 매체를 활용해 시각언어로 꾸민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전시장 입구에 ‘아름다움 기묘함 더러움’이란 제목을 붙이고 근작 100여 점을 걸었다. 작가는 “카오스 같은 세상을 들여다보고 그 안에서 생긴 다양한 ‘결’을 찾아 정리한 결과물”이라며 “세상에 존재하는 많은 것의 ‘끌림’에 주목했다”고 설명했다.

1980년 경북 김천에서 태어난 문씨는 2005년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전시에 최연소 작가로 참여해 일찌감치 미술계의 주목을 받았다. 그는 주변의 사람들과 동물, 식물이 이뤄내는 관계를 따뜻한 시선으로 그려낸다. 대상을 그대로 그리는 것이 아니라 주름치마처럼 따스한 색으로 버무려 문인화처럼 작업한다.

신작 ‘장미’는 넝쿨과 꽃송이 한 잎 한 잎까지 세밀하게 묘사한 대작이다. 장미 넝쿨을 화면의 중심 ‘무대’로 설정해 복잡한 꽃의 표정을 마치 초상화 속 인물의 표정을 드러내듯 표현했다. 작가는 “장미 넝쿨은 아름다움의 상징이 아니라 꽃과 새, 벌레가 저마다의 본성 및 본능에 따라 움직이는 공간”이라고 설명했다.

이산가족의 이별 모습에서 영감을 받아 손에 집중한 작업, 본능적으로 뒤엉킨 남녀의 신체를 묘사한 작업, 물을 머금은 식물이 보여주는 다양한 형태의 작업 등도 근원적인 끌림을 시각화했다. 스크래치 기법을 사용해 차가운 금속성과 벽화처럼 거친 질감을 낸 게 도드라진다. 검은 바탕에 젯소를 바르고, 날카로운 도구로 긁어 떼어내고, 과슈로 채색해 회화에서 드러나지 않는 소소한 사건들을 기술했다.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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