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군 간부를 대거 이끌고 백두산을 찾았다. 백두산은 북한이 김일성 주석의 항일운동 장소이자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탄생지라고 선전하는 곳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3일(현지시간) 영국 런던에서 김정은을 2년 만에 ‘로켓맨’이라 부르며 대북 무력 사용 가능성을 경고한 직후 공개된 행보여서 더욱 주목된다. 미·북 비핵화 실무협상의 교착 국면이 장기화하는 가운데 북한이 대미 강경 노선으로 돌아서며 미·북 간 ‘강 대 강’ 대치가 재연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49일 만에 백두산 간 김정은
조선중앙통신과 노동신문 등 북한 관영매체들은 4일 김정은이 군마를 타고 백두산에 올랐다고 보도했다. 지난 10월 16일 이후 49일 만이다. 김정은은 그동안 중요한 정치적 결정을 앞두고 백두산을 찾았다. 이번엔 미국에 제시했던 ‘연말 시한’이 코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미국을 향해 ‘새로운 길’을 갈 것이라고 사실상 공표한 행동으로 풀이된다. 이번 백두산 방문엔 박정천 육군 참모총장을 비롯해 군종 사령관, 군단장 등 군 인사가 대거 수행했다. 부인 이설주도 동행했다.
김정은은 아버지 김정일과 관련된 곳을 주로 시찰했다. 김정일이 태어난 장소로 홍보되는 백두산 밀영을 비롯한 각종 사적지, 답사 숙영소에 갔다. 김정은은 이번 시찰에 대해 “제국주의자들의 전대미문의 봉쇄 압박 책동 속에서 우리 혁명의 현 정세와 환경, 필수적인 요구에 맞게 백두의 굴함 없는 혁명정신을 심어주기 위한 혁명전통 교양을 강화하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북한 노동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상무위원회는 이달 하순 당 중앙위원회 제7기 제5차 전원회의를 소집한다고 이날 밝혔다. 이번 전원회의는 4월 10일 제4차 회의가 열린 뒤 8개월여 만에 열린다. 김정은이 4월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을 통해 미국에 공개선언했던 ‘연말 시한’이 끝나가면서 ‘새로운 길’의 구체적 방향을 내놓을 것으로 전망된다.
‘2017년 미·북 말폭탄’ 재연되나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간 갈등 분위기가 형성되면서 일각에선 2017년 9월 유엔총회 당시 두 사람 간 ‘말폭탄 주고받기’가 재연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은 당시 김정은을 ‘로켓맨’이라 불렀다. 북핵 문제를 언급할 땐 “내 책상엔 북한 것보다 더 크고 아름다운 핵 버튼이 있고, 그건 실제로도 작동한다”고 말해 자국 내 외교·안보당국자까지 긴장시켰다. 김정은은 국무위원장 명의로 자신의 이름을 건 성명을 내며 트럼프 대통령에게 “미국의 늙다리 미치광이를 반드시, 반드시 불로 다스릴 것”이라고 위협했다. 미·북 관계는 최악으로 치달았다가 이듬해 싱가포르 6·12 정상회담을 계기로 극적으로 반전했다.
전문가들은 양측이 우선 대화의 판 자체를 깰 생각은 없다고 지적했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의 도발을 좌시하지 않고 있음을 시사했고, 북한도 그에 강경하게 맞설 것이라고 내다봤다. 북한은 올 들어 총 13차례 미사일 도발을 했고, 지난달 23일엔 서해에서 해안포를 발사해 9·19 남북한 군사합의를 위반했다.
조성렬 북한대학원대 초빙교수는 “과거 로켓맨 발언 때와 다른 분위기인 건 맞지만 미국이 더 이상 북한에 양보할 생각이 없음을 확실히 나타냈다고 본다”며 “연내 북한과 미국의 실무회담은 열리기 힘들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이미아 기자 mia@hankyung.com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