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영등포에 거주하는 40대 A씨는 작년 재산세와 종합부동산세를 합해 900만원가량 냈는데 올해는 3000만원으로 급증했다. 올초 이사 목적으로 사둔 아파트 때문에 다주택자로 분류된 게 화근이었다. 그는 “직장인 연봉에 해당하는 세금을 폭탄처럼 맞게 됐다”며 “조세 불복을 해야 하나 대출을 받아야 하나 고심 중”이라고 말했다.
종부세 납부 기한이 오는 16일 종료되는 가운데 시중은행 프라이빗(PB)센터 및 세무법인마다 ‘종부세 상담’이 줄을 잇고 있다. 작년 대비 세부담이 워낙 많이 커져서다. 은퇴자들은 “세금 낼 능력이 없으면 다른 곳으로 이사 가라는 게 말이 되느냐”며 하소연하고 있다.
2주택 이상 보유자에겐 ‘폭탄’
주택 소유자들 사이에선 보유세 부담이 과도하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올해 급등한 공시가격을 기준으로 7월과 9월 재산세를 한 차례씩 납부한 뒤 12월 또다시 종부세를 내야 해서다.
급증한 종부세 고지서를 받아든 사람 중에선 0.5~2.7%의 세율이 적용되는 1주택자보다 2주택 이상 소유자(세율 0.6~3.2%)의 비중이 높다. 종부세 부과 기준이 1주택자의 경우 공시가격 9억원인 데 반해 2주택 이상자는 6억원부터 시작하기 때문이다. 서울 강북 30평형대 아파트에 거주하는 정부 부처의 한 공무원은 세종시 아파트에 당첨되면서 종부세 고지서를 받았다. 강남권 외에도 종부세가 많이 부과된 배경이다.
서울 등 조정대상지역의 세부담 상한 비율이 200%(2주택자)~300%(3주택 이상자)로 묶여 있지만 작년 6월부터 올해 5월까지 부동산을 추가 매입했다면 상한 적용도 받지 못한다. 경기 분당에 사는 C씨는 올초 서울에서 작은 빌라를 구입한 뒤 올해 종부세가 갑자기 600% 뛰었다.
종부세만 수천만원씩 내야 하는 사례도 드물지 않다. 강남에 거주하는 전 기업 대표인 D씨는 올해 고지서를 받은 뒤 입을 다물지 못했다. 5000만원이 넘는 고지액이 찍혀 있어서다. 그는 “한남동 재개발 입주권을 갖고 있긴 하지만 세금이 1년 새 두 배 넘게 뛸 줄은 몰랐다”고 했다. 종부세를 내려고 5일 시중은행에서 8000만원을 대출받은 E씨는 “부동산이 많아도 현금을 수천만원씩 들고 있는 사람이 몇 명이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강남 PB들 “증여하는 게 최선”
은행 PB센터와 세무법인마다 주택 증여 상담이 급증하고 있다. 종부세가 가구가 아니라 개인별 과세 방식인 만큼 배우자나 자녀에게 증여하면 종부세를 피하거나 줄일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PB들도 “한꺼번에 증여세를 납부해야 하지만 매년 부담이 커지는 종부세보다는 낫다”고 조언하고 있다.
한 대형은행의 PB센터장은 “종부세 상담을 받으려는 고객들이 크게 늘면서 우리 센터뿐만 아니라 조세 관련 팀도 바빠졌다”며 “특히 은퇴 후 일정한 수입이 없는 고령자에게는 증여를 적극 조언하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증여가 무조건적인 ‘해결책’은 아니라는 게 은행권 얘기다. 자녀 등이 주택청약을 노리고 일정 점수를 쌓아놨다면 장기적인 득실을 따져봐야 해서다.
보유세 집단반발 움직임도
올해 종부세를 고지받은 사람들을 중심으로 집단반발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주택을 팔고 싶어도 최고 62%의 무거운 양도소득세율 때문에 매도하기 어렵다는 하소연이 많다. 고가 주택을 매각한 뒤 저렴한 주택으로 이사를 가려고 해도 새 주택 취득에 따른 취득세율(1~3%)이 커다란 부담이다.
조진한 세무법인 광장 세무사는 “종부세 부담이 급증했다는 이유로 세무사무소나 은행을 찾아와 하소연하는 은퇴자들이 부쩍 늘었다”고 말했다. 노원구의 한 세무법인 관계자는 “강북권 거주자 중 상당수도 종부세로 수십만원씩 내야 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며 “금액 자체보다 부담 비율이 한꺼번에 급증한 게 문제”라고 했다.
이 때문에 10년째 그대로인 종부세 부과 기준(1주택자 공시가격 9억원, 2주택자 이상은 6억원)을 상향 조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은퇴자들에게 제공하는 종부세 세액공제를 지금보다 확대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지금은 만 60~70세 이상에 한해 10~30%, 보유기간별로 20~50%를 공제해주고 있다.
조재길/정소람 기자 road@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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