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화폐 본딴 가상화폐, 스테이블 코인
중개인 없이 신뢰를 구축할 수 있는 가상화폐는 그 자체로 새로운 가치 창출의 잠재력을 지니지만, 화폐가 가져야 할 기본적 속성인 거래의 매개와 가치의 저장 그리고 가치 척도 수단으로서의 속성을 충족하지 못한다. 무엇보다 가치가 안정적이지 않다. 2016년 1000달러였던 비트코인 가격은 2018년 2만달러로 약 20배 이상 폭등했고, 이후 반절 이상 폭락하기도 했다.
‘스테이블 코인’은 법정화폐의 안정성을 반영해 가상화폐를 화폐로 쓰고자 하는 목적으로 등장했다. 수요와 공급에 의해 가격이 달라지는 가상화폐의 한계를 극복하고 ‘1코인=1달러’를 공식화한 것이다.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페이스북의 ‘리브라’가 대표적이다. 리브라는 ‘리브라 리저브’로 불리는 예치자산으로 인해 가치가 담보된다. 예치자산의 재원은 투자자와 사용자로부터 나온다. 투자자들은 리브라 코인과 별개로 발행되는 토큰을 통해 투자하고, 사용자들은 법정화폐로 리브라 코인을 구매할 수 있다. 이렇게 모인 금액은 리브라의 예치자산이 되고, 이를 관리하는 리브라협회는 예치자산을 국채와 같은 안전자산에 투자한다. 페이스북의 스테이블 코인 리브라가 안정적일 수 있는 이유이다. 리브라 외에도 기업이 자사 계좌에 달러와 같은 법정화폐를 예치해놓고, 이에 맞춰 코인을 발행하는 방식의 스테이블 코인이 많이 사용된다. 코인 수요가 증가해 가격이 오르면 동일한 만큼의 달러를 추가 예치해 가격을 유지한다. 테더가 발생하는 ‘USD테더’, 트러스트토큰의 ‘트루USD’가 대표적이다.
중앙은행은 가상화폐 맞서 디지털화폐 추진
중앙은행은 화폐의 디지털 전환에서 뒤처지지 않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영국 중앙은행은 법정화폐 발행과 유지비용 절감을 통해 국내총생산(GDP)의 3%까지 절약할 수 있다고 분석한다. 영국뿐만 아니라 미국, 캐나다, 스웨덴, 싱가포르 등 세계 대부분 중앙은행이 ‘중앙은행 디지털화폐’에 관한 연구를 하고 있다.
미국 중앙은행(Fed)이 적극 고려하는 디지털화폐는 ‘Fed코인’이다. Fed가 가상화폐인 Fed코인을 발행해 미 달러화와 1 대 1 비율로 교환하는 것을 보장하며, 현금과 비슷하게 소비자의 보유 수요에 맞춰 발행해 가치가 안정적으로 유지된다. 코인이 발행되는 금액만큼 현금 또는 지급준비금이 감소하고, 현금과 마찬가지로 중앙은행이 독점적으로 발행한다. 스웨덴 중앙은행은 현금 사용이 급격하게 축소되면서 이를 대체하기 위해 e-크로나 발행을 고려하고 있다. 발행 규모는 소비자의 수요에 따라 결정되며 온·오프라인 상거래 지급결제 및 송금 등에 실시간으로 사용 가능하다.
기본 철학을 유지하며 발전
2008년 등장한 비트코인과 블록체인 기술은 탈중앙화를 통해 새로운 가치를 창출해낼 수 있는 토대라는 점에 많은 사람이 동의한다. 중개자가 사라짐에 따라 발생한 시간과 비용의 효율성은 금융 분야에서 이미 의미있는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하지만 현실에서 대안으로서의 가상화폐는 이제 막 초기 단계를 지나고 있을 뿐이다. 기존 금융시스템은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거의 유일한 신뢰 기반인 데 비해, 가상화폐는 관리 및 책임 주체가 없고, 기존의 무언가와 비교할 수 없는 전례 없는 시도인 탓에 미래의 대안으로 본격적으로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 더 많은 참여와 검증이 필요한 상황이다. 혁신 그 자체는 급진적이지만 현실에서 이의 실현은 작은 걸음으로 시작된다. 블록체인 기술 역시 다양한 분야에서 이제 막 사용이 시작됐다. 어떤 모습으로 그 혁신이 꽃을 피울지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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