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약 영업은 영업직의 ‘끝판왕’으로 불린다. 고객이 의사이다 보니 업무 난도와 강도가 높고 실적 압박이 심하다. 불법 리베이트와 갑질 논란도 빠지지 않는다. 살얼음판 같은 제약업계에서 오동욱 한국화이자제약 대표는 ‘미다스의 손’으로 유명했다. 손대는 제품마다 판매 1위에 올려 ‘영업의 신’으로 통했다. 지금까지 거쳐온 네 곳의 다국적 제약사에서 모두 초고속 승진을 하며 승승장구했다. 스트레스가 엄청날 것 같은데도 그의 얼굴은 해맑았다. “20년 동안 그만두고 싶을 정도로 힘든 적이 한 번도 없었다”는 믿기 어려운 말을 했다. 올해 만으로 50세. 한국화이자와 동갑이다. 사람들이 40대 초반으로 볼 정도로 ‘동안’이다. 긍정적이고 낙천적인 성격 덕분이라고 한다. 그의 단골집인 서울 주교동 우래옥 본점에서 국내 1위 다국적 제약사 한국법인 수장의 인생 이야기를 들었다.
늦깎이 영업맨의 도전
오 대표는 평양냉면 마니아다. 우래옥은 회현동 본사와 가까워 즐겨 찾는 곳이다. 자리에 앉자마자 그는 능숙하게 불고기와 전통평양냉면을 주문했다. 배추김치와 나박김치, 무생채가 밑반찬으로 깔렸다. 불판이 올라오고 불고기가 지글지글 소리를 내며 구워졌다. 달큰하고 고소한 냄새가 입맛을 돌게 했다. “평양냉면은 가게마다 특색이 있어 좋습니다. 녹두빈대떡, 만두처럼 곁들여 먹을 수 있는 메뉴도 다르고요. 우래옥에서는 불고기가 제일 맛있습니다.”
평양냉면에 입문하게 된 것은 아버지 덕분이다. 그의 부친은 냉면집에 자주 데리고 갔다. “면을 가위로 자르면 안 되고 식초, 겨자도 넣지 않고 있는 그대로 먹어야 한다”는 게 아버지가 알려준 비법이었다. 오 대표는 젊은 시절엔 평양냉면의 매력을 알지 못했다. 맛도 없고 질기기만 했다. 인생의 질곡을 경험하고부터 평양냉면에 빠져들었다. “제약회사에 다니면서 몇 번 먹다 보니 어느 순간 좋아지게 되더군요. 지금은 겨울에도 한 달에 한 번은 꼭 먹으러 갑니다. 아버지가 가르쳐주신 비법대로 하고 있죠. 가위로 자르는 것만 빼고요.”
새하얀 무채와 배가 수북이 올라간 냉면이 나왔다. 오이와 파, 고춧가루, 계란처럼 색깔이 들어간 고명은 올라가지 않는다. 기름이 반지르르 흐르는 육수를 한입 떠먹어보니 입안에 소고기의 풍미가 은근히 퍼졌다. 자극적이지 않고 담백했다. 무채색의 평양냉면처럼 오 대표의 성장사는 평범하다. 안정적인 직업을 가지라는 부모님의 말씀에 삼육대 약학과에 들어갔고 서울대 약학대학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한일약품공업 연구소에서 5년간 병역특례기간을 보내고 진로를 고민했다. 그는 국내 제약사의 연구직은 비전이 없다고 생각했다. 일을 제대로 배우려면 글로벌 회사에 가서 영업부터 시작해야겠다고 결심했다. 한번 부딪혀보고 적성에 맞지 않으면 나오면 된다는 ‘안되면 말고’ 정신이 그에겐 있었다. 서른에 한국MSD의 영업직에 지원했다. 입사해보니 약학 전공자뿐만 아니라 의대 출신도 많았다. “당시 분위기가 데이터에 기반한 과학적 영업 마케팅 쪽으로 기울고 있었습니다. 기존 영업 방식에 물들지 않은 사람들을 선호했어요. 시기를 잘 타고난 덕분에 치열한 경쟁률을 뚫고 들어갈 수 있었던 거죠. 그때 도전하지 않았으면 저는 오늘 이 자리에 없었을 겁니다.”
즐기는 것이 성공 비결
초짜 신입에게 서울대병원이라는 초대형 고객사가 맡겨졌다. 그때부터 서울대병원 의사들이 즐겨 찾던 우래옥을 드나들게 됐다. 오 대표는 바싹 구워진 불고기 한 점을 면에 얹어 후루룩 삼켰다. 달착지근한 고기와 슴슴한 냉면이 잘 어울렸다. 제약 영업사원으로 지낸 1년은 불고기와 냉면처럼 뜨겁고 차고 달고 짠 나날이었다. 그는 전체 영업사원 중 실적 3위를 기록했고 본격적으로 마케팅에 뛰어들었다. 첫 프로젝트로 한국MSD의 고지혈증 치료제 ‘조코’를 맡아 업계 1위에 올려놨다. 입사 2년 만에 최연소 지점장으로 승진했다. 직원 8명과 영업팀을 꾸리고 6개월차가 되던 때 아스트라제네카에서 러브콜이 왔다. 아스트라제네카는 조코의 대항마로 ‘크레스토’ 출시를 앞두고 있었다. 오 대표는 신제품에 매력을 느꼈다. 업무 체계가 갖춰지지 않았던 아스트라제네카로 이직해 영업사원 교육부터 마케팅 영상과 자료 제작 등 1인 다역을 맡았다. “몸은 바빴지만 돈 주고도 살 수 없는 경험을 했다”고 그는 말했다. 크레스토는 ‘대박’을 터뜨렸다. 크레스토의 판매 성장률은 세계 최고였다. 글로벌 본사로부터 우수한 실적을 낸 국가에 주는 상도 받았다. 한국법인이 수상한 것은 처음이었다. 비결을 묻자 “식상한 말이긴 하지만 즐기는 사람은 이길 수 없다”고 했다. “일이 재미있었습니다. 주말에 나와서 일해도 좋았어요. 회사 워크숍을 가면 MT 간 기분이었죠. 먹고살기 위해 억지로 하는 게 아니라 자기가 좋아하고 잘할 수 있는 영역을 찾으면 됩니다.”
오 대표는 ‘즐기는 방법’을 아는 사람 같았다. 순수 국내파 출신의 토종 영어로 다국적 제약사 사장에까지 오르기란 쉬운 게 아니다. 그는 입사 초기엔 외국인 앞에만 서면 ‘꿀 먹은 벙어리’가 됐다. “한번은 회의에 갔는데 10%도 알아듣지 못했습니다. 상사가 ‘오늘 얼마나 알아들었냐’고 묻길래 자존심에 70%라고 답했죠. 그랬더니 ‘1.7%?’라고 하더군요. 영어도 못하는 애를 보냈다고 사장에게 보고까지 올라갔어요. 멘탈이 탈탈 털린 거죠.” 하지만 그는 스트레스로 조바심을 내거나 좌절하지 않았다. ‘네이티브처럼 유창해질 필요는 없다’는 마음가짐으로 꾸준히 말하기 연습을 했다. 출근할 때 라디오 영어 방송을 듣고 좋아하는 영화를 자막 없이 100편 넘게 봤다. 남들이 보기엔 ‘피나는 노력’인데 본인은 “매일 부담스럽게 공부하지 않았다”고 한다. “저는 대담하게도 발표할 때 다른 사람들처럼 스크립트를 달달 외우지 않았습니다. 외우면 늘지 않아요. 국내파는 모국어인 한국어로 생각하고 영어로 얘기해야 하는데 그 시간을 단축하려면 ‘막 영어’라도 계속 연습해야 하죠. 지금은 업무에 지장이 없을 정도가 됐지만 아직도 제 영어는 진화 중입니다.”
“변화와 혁신만이 살길”
오 대표는 제품을 출시하고 성공시킨 다음 새로운 도전 과제를 찾아 3년마다 회사를 옮겼다. 10년째 근무하고 있는 화이자가 가장 오래된 직장이다. 그는 “화이자는 임직원이 안주하도록 절대 내버려두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오 대표는 스스로 의욕을 품고 흥미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한다. 일 자체를 즐길 수 있었던 것도 지루할 틈 없이 항상 변화를 추구했기 때문이다.
2016년 한국화이자 대표가 된 뒤 그는 ‘변화와 혁신’에 주력해왔다. 위계질서를 없애고 수평적 문화를 형성하기 위해 올 하반기부터 직급을 버리고 ‘님’으로 부르도록 호칭법을 바꿨다. 의사결정 단계도 간소화했다. 지난 5월에는 업무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법인을 두 개로 분리했다. 다양한 영역에서 최신 정보기술(IT)을 접목하려는 시도도 하고 있다. 챗봇을 이용해 의약품에 관한 질문에 24시간 답변해주는 서비스를 도입하거나 글로벌 석학과 비디오 콘퍼런스를 하는 것이 대표적인 예다. 화이자는 4차 산업혁명에 대비하기 위해 전사적으로 빅데이터와 인공지능을 활용한 신약 개발에도 투자하고 있다. 오 대표는 “한국에서도 화이자 같은 제약사가 나와야 한다”며 “국내 제약기업들이 발전하려면 기업이 모험심과 도전정신을 품을 수 있는 생태계를 조성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부가 국내 제약바이오기업에 자금을 지원해주는 ‘떠먹여주기’ 방식으로는 절대 경쟁력을 키울 수 없습니다. 혁신 신약을 인정하고 약값으로 적절한 보상을 해준다면 하지 말라고 해도 벤처기업들이 신약 개발에 뛰어들 겁니다.”
■ 한국화이자제약은
1969년 창립한 한국화이자제약은 세계 1위 제약사 화이자의 한국법인이다. 국내 진출한 31개 다국적 제약사 중 부동의 매출 1위를 기록하고 있다. 2018년 매출은 7344억원이었다. 고지혈증 치료제 ‘리피토’와 폐렴구균 백신인 ‘프리베나13주’, 남성 발기부전 치료제 ‘비아그라’ 등 101가지 의약품을 국내에 공급하고 있다. 국내 병원, 연구기관 등과 협업해 다수의 글로벌 신약 개발 프로젝트도 수행하고 있다. 직원은 지난 6월 기준 713명이다. 한국화이자제약은 올 5월 한국화이자제약과 한국화이자업존으로 분리됐다.
■ 오동욱 한국화이자제약 대표 약력
△1969년 서울 출생
△1992년 삼육대 약학과 졸업
△1994년 서울대 약학 석사 한일약품공업 연구소 연구원
△1999년 한국MSD 세일즈매니저
△2003년 한국아스트라제네카 스페셜티케어BU 디렉터
△2006년 한국와이어스 바이오파마BU 디렉터
△2010년 한국화이자제약 스페셜티케어 사업부 총괄(전무)
△2014년 한국화이자제약 백신사업부문 아시아 클러스터 대표(부사장)
△2016년~ 한국화이자제약 대표이사 사장
■ 오동욱 대표의 단골집 우래옥
서울 最古 평양냉면집…한우육수 깊은 맛 일품
서울 주교동에 있는 우래옥은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냉면집이다. 해방 후 1946년 서북관이라는 이름으로 문을 열었다. 평양의 유명한 냉면집 명월관을 운영했던 고(故) 장원일 씨가 주교동 적산가옥을 사들여 개업했다. 6·25전쟁 때 잠시 폐업했으며 피란에서 돌아와 ‘다시 돌아온 집’이라는 뜻의 우래옥(又來屋)으로 간판을 바꿨다. 손님들에게 ‘다시 찾아와달라’는 의미도 있다. 우래옥은 3대째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미쉐린 가이드뿐만 아니라 서울미래유산으로 지정됐다.
가장 유명한 전통평양냉면(1만4000원)은 육수를 우릴 때 한우만 사용해 묵직하고 깊은 맛이 난다. 동치미 국물이나 꿩, 닭 육수와 달리 새콤달콤한 맛이 없다. 자극적이지 않아 꾸밈없고 뒷맛이 깔끔하다. 풍미 가득한 양지 육수에 메밀국수를 담고 배추김치, 양지 수육, 무와 배를 고명으로 올린다. 슴슴한 편이지만 밍밍하고 싱겁다는 느낌을 주진 않는다. 면은 메밀이 많이 들어 있어 툭툭 잘 끊기고 씹을수록 고소하다. 냉면사리만 추가해서 먹을 수도 있다. 평양냉면 외에 전통평양비빔냉면, 온면, 김치말이냉면도 있다. 냉면과 곁들여 먹는 불고기도 인기다. 달착지근한 맛이 감도는 전형적인 서울식 불고기다. 주문하면 불판에 올려 구워먹을 수 있다. 담백한 평양냉면과 잘 어울린다.
전예진 기자 ac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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