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은행장이 누가 되든 소비자들은 아무도 관심 없습니다. 기업은행 임원들이 본인 거취가 달려 있다는 점 때문에 궁금해할 뿐이죠.”
최근 만난 한 정부 관계자의 얘기다. 기업은행장에 관료 출신 낙하산이 올 가능성이 있냐는 질문에 대한 답이었다. 관료 출신이 은행장으로 올지에 대한 직접적인 답은 내놓지 않았다.
이 같은 의견은 금융당국 내부에 만연해 있다. 다른 정부 관계자는 “기업은행은 정책금융을 집행하는 곳이기 때문에 엄청난 경영능력이 필요하지 않다”며 “관료 출신이 간다고 해도 경영상황이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김도진 기업은행장의 임기 만료가 오는 27일로 다가오면서 차기 행장 후보로 몇몇 전·현직 관료가 거론되고 있다. 정은보 한·미 방위비협상 수석대표, 유광열 금융감독원 수석부원장, 윤종원 전 청와대 경제수석 등이다. 청와대에선 이미 기업은행장 후보군에 대한 사전 인사 검증에 들어갔다는 이야기도 나돈다. 검증 절차를 통과한 2~3인을 금융위원장이 임명제청하고, 대통령이 임명하는 절차를 거친다.
이 같은 정부 내부 분위기를 감지한 기업은행 임직원들은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관료들이 행장 자리를 챙기기 위해 기업은행 임직원들의 의사를 무시하고 있다는 데 대한 불만이 가장 크다. 한 기업은행 30대 직원은 “은행에 들어오면 누구나 한 번쯤은 행장 자리에 오를 것을 꿈꾼다”며 “관료들이 기업은행장 자리에 오는 것을 당연시하면 은행 직원들의 사기가 꺾일 것”이라고 토로했다.
관료 출신 기업은행장은 2007년 말 취임한 윤용로 전 행장이 마지막이었다. 2010년 조준희 행장을 시작으로 권선주·김도진 행장까지 3연속 내부 출신 행장 전통을 이어오면서 기업은행의 존재감도 훨씬 커졌다. 조 전 행장은 외형 확장으로 기업은행의 중소기업 지원 규모를 대폭 키웠다. 권 전 행장은 최초 여성 은행장으로 금융권 여성 임원들이 대거 출현할 수 있는 기폭제가 됐다. 김 행장은 지난해 기업은행 사상 최대 실적을 냈다.
일각에서는 기업은행 일부 임원들이 행장 자리에 오르기 위해 실무는 뒷전에 두고 파벌 형성과 정치권 로비에만 신경 쓴다는 비판도 내놓고 있다. 이 같은 비판에 대해서도 기업은행 내부 시선은 곱지 않다.
다른 기업은행 직원은 “청와대에서 인사 검증을 하는 이유는 실력이 없으면서도 정치력만 믿고 행장 자리를 탐내는 인물을 가려내기 위한 것 아니냐”며 “관료들이 여전히 모피아(관료+마피아) 근성을 못 버렸다”고 말했다.
ra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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