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창] 중국 경제 키워드는 '커지는 내수시장'

입력 2019-12-09 18:17   수정 2019-12-10 00:05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폴 크루그먼 교수는 10년에 한 번씩 내게 통찰력을 선물해준다. 1999년 홍콩에서 그를 처음 만났다. 아시아 외환위기로 각국이 허리띠를 졸라맬 때 중국은 ‘휴일경제(holiday economy)’ 처방을 썼다. 많이 쉴수록 경기가 뜬다는 장기 연휴제도다. 내가 중국의 휴일경제를 잘 이해하게 된 것은 크루그먼 교수 덕분이다. 그는 1978년 미국에서 발표된 ‘통화이론과 그레이트 캐피털 힐 베이비시팅조합의 위기(Monetary Theory and the Great Capital Hill Baby-sitting Co-op Crisis)’를 인용하며 불황의 원인과 대책을 설명해줬다. 어쨌든 중국의 휴일경제 처방은 거대 시장잠재력이 있기에 가능했다. 한국은 이때 중국 내수시장에 발을 들여놨어야 했다.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와중에 베이징에서 크루그먼 교수를 다시 만났다. 그의 관점은 미·중 관계의 핵심을 짚는 데 도움이 됐다. “미국은 중국에서 돈을 빌려 집을 사고팔다가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를 맞았다.” “중국은 더 이상 수출주도형 성장으로는 안 되며 내수를 키워야 한다.” 돌이켜보면 중국과 한국이 자제했어야 할 일이 있다. 당시 중국은 4조위안 규모의 역대급 재정정책을 펼치고 있었는데 당장 언 발은 녹였지만 과잉 유동성은 두고두고 골칫거리가 됐다. 한국은 그 4조위안을 눈앞의 수출시장이라고 착각하지 말았어야 했다. 그 돈은 한국의 대(對)중국 주력 수출 분야인 원부자재 수입용 자금이 아니라 자체 동원한 긴급구제 금융이었다. 이때도 차분하게 내수시장 진출 확대 채비를 했어야 했다.

지난 9월 미·중 무역분쟁 중에 크루그먼 교수가 서울을 찾았다. 이번엔 만나지 못했지만 묵직한 메시지를 느꼈다. “한국만큼 적극적으로 글로벌 밸류체인(GVC)에 참여한 나라가 없었다. 글로벌 공급망을 만들어낸 세계화가 한계에 부딪히며 보호무역주의가 고개를 들고 있다.” ‘세계의 공장’ 중국은 GVC로 성장했고 한국은 그런 중국에 가공용 제품을 수출해왔는데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세계무역기구(WTO)의 최근 보고서에 따르면 2000년 글로벌 상품 및 서비스의 수요·공급은 미국과 독일 두톱이 이끌었으나 2017년에는 중국이 가세해 스리톱 체제로 바뀌었다. 이 과정에서 3국은 각각 미주, 유럽, 아시아에 생태계를 강화하는 지역가치사슬(RVC: regional value chain)을 구축했다.

특히 주목할 대목이 있다. 중국이 10개를 생산했을 때 수출 후 국내 소비량이 10년 전 7개에서 지금은 9개로 늘었다. 중국 생산-중국 소비 비중이 이 정도면 국가가치사슬(NVC: national value chain)이라고 부를 만하다.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알리바바와 텐센트 등 온라인 영역에서 시작된 플랫폼 비즈니스 모델이 최근 제조 대기업에까지 확산되는 움직임을 보이면서 플랫폼 밸류체인(PVC: platform value chain) 시대의 개막을 앞두고 있다. 내수시장이 커지고 고도화되는 흐름이다.

미국이 1560억달러 규모의 중국산 수입품에 추가 관세를 부과하기로 한 15일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글로벌 시장이 안도 랠리로 갈지, 패닉에 빠질지 예측하기 쉽지 않지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어느 경우에도 중국은 내수시장을 키워 외풍을 이겨내려 할 것이다. KOTRA 중국지역본부가 2020년 중국시장을 주목하는 까닭이다. 올해 중국 5대 권역별 진출 전략을 수립한 데 이어 내년에는 소재부품·소비재·서비스를 망라하는 60개 이상의 대형 마케팅 지원 사업을 연초부터 집중 전개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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