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맹학교 '소음고통' 외면하는 민주노총

입력 2019-12-10 18:34   수정 2019-12-11 00:21

“그쪽과는 말이 안 통해요. 맹학교 아이들은 낮 시간에 수업을 받는데 시위는 낮에도 하잖아요. 답답합니다.”

국립 서울맹학교의 한 학부모가 최근 기자에게 늘어놓은 하소연이다. 학부모들이 말하는 ‘그쪽’은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산하 톨게이트노조다. 학부모회가 청와대 인근에서 벌어지는 집회 소음과 관련해 민주노총에 면담을 요청한 지 3주가 넘었지만 ‘요지부동’이다.

경찰은 청와대 인근에서 낮 시간대에 벌어지는 집회를 제한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10일 밝혔다. 서울맹학교 학부모들이 “집회를 제한해달라”며 경찰에 협조를 요청한 지 22일 만이다. 지난달 19일 학부모회는 서울 종로경찰서에 집회 소음 자제를 촉구하는 공문을 전달하면서 민주노총, 범국민투쟁본부, 경찰 측에 각각 면담을 요청했다. 청와대 인근에서는 낮에도 집회 허용 기준치인 65dB을 초과하는 소음이 자주 발생해 500m나 떨어진 서울맹학교에서 정상 수업을 하기 어려울 정도다. 학부모회는 민주노총과 범투본을 소음 피해의 주요 원인으로 보고 있다.

학부모회는 이달 3일 범투본과 소음을 줄이기로 합의했다. 양측 사이에 한 차례 설전이 오갔지만 학부모회는 “합의 후 소음이 눈에 띄게 줄었다”고 전했다. 반면 민주노총은 학부모회 요청에 제대로 된 답변을 내놓지 않고 있다. 경찰은 지난달 25일 청와대 앞 야간집회를 하지 못하도록 제한했다. 맹학교 학생들의 수업권과 이동권을 적극 보장하겠다는 게 경찰의 취지였지만 정작 학생들의 보행훈련과 수업이 있는 낮 시간대 집회는 제한하지 못해 상황이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 견디다 못한 학부모회는 4일 “낮 시간대 집회도 제한해달라”며 경찰에 재차 민원을 넣었다.

민주노총은 “최근 청와대 인근에서 노숙농성을 하진 않아 크게 관련이 없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민주노총은 농성용 천막만 효자치안센터에서 인근 세종로 소공원으로 옮겼을 뿐 매일 두 차례 서울맹학교 앞을 지나 효자치안센터 앞으로 행진 시위를 벌이고 있다. 학부모회 역시 민주노총의 이 같은 입장에 ‘어불성설’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집회·시위의 자유는 헌법 제21조에 명시된 국민의 기본권이다. 정부가 이를 최대한 보장해주는 건 바람직한 일이다. 그러나 집회·시위로 주민의 일상생활이 훼손되고 권리가 침해받는다면 정부가 이를 제한해야 한다는 것 역시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에 명시돼 있다. 민주노총은 법 테두리 안에서 시위하고, 정부도 균형있는 법 집행을 통해 학생들과 주민의 일상을 보호하는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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