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기술(IT)의 발달로 사라지는 것들이 있다. 직장인의 점심시간을 책임졌던 식권도 그중 하나다. 종이 식권을 스마트폰에 집어넣은 모바일 식권이 확산되면서 생긴 변화다.
‘식권대장’ 브랜드로 널리 알려진 벤디스는 국내 모바일 식권 시장을 개척한 기업으로 꼽힌다. 회사 인근 식당에 들러 스마트폰만 가져다 대면 결제가 끝난다. 식권을 건네거나 장부에 이름을 적지 않아도 된다. 현재 350개 기업 6만여 명의 직장인이 식권대장으로 점심을 해결한다. 순천시 등 주요 공공기관도 직원들의 점심을 벤디스에 맡기고 있다.
스마트폰 보고 놀란 고시생
벤디스를 이끄는 조정호 대표는 한국외국어대 법대 출신이다. 그도 처음엔 고시생이었다. 조 대표가 창업가로 변신한 계기는 스마트폰이었다. “4학년이던 2010년 일이에요. 친구가 건넨 애플 아이폰을 요리조리 뜯어보다가 정신이 멍해졌어요. 세상이 이렇게 빨리 바뀌는데 법전만 들여다보고 있는 내 자신이 우습게 느껴지더라고요.”
그는 그길로 헌책방에 공부하던 책들을 팔고 창업 전선에 뛰어들었다. 고시공부를 뒷바라지하던 부모님의 불호령도 그의 결심을 바꾸지 못했다. 처음엔 소상공인들의 모바일 상품권과 같은 마케팅 도구를 판매하는 사업에 나섰다. 아이디어엔 자신이 있었지만 영업이 만만찮았다. 조그만 업체나 매장이라도 사장을 만나려면 몇 달 공을 들여야 했다. 수상한 사람으로 몰려 건물 경비실에 억류되는 일도 잦았다.
기회는 우연히 찾아왔다. 2013년 무렵 한 게임사가 종이 식권 관리 솔루션 제작을 의뢰했다. 벤디스가 쓰는 마케팅 앱(응용프로그램)과 구조가 비슷하다는 이유에서였다. 계약에까지 이르지는 못했지만 그때부터 새로운 시장이 보였다. 매일 돌아다니던 거리 곳곳에 ‘장부거래’ ‘식권 받습니다’와 같은 문구가 붙어 있는 것들이 눈에 들어온 것. 조 대표는 “대기업 한 곳만 뚫어도 수십 개 식당을 고객으로 끌어들일 수 있다는 생각에 모바일 식권으로 비즈니스 모델을 바꿨다”고 설명했다.
위기도 있었다. 천신만고 끝에 대형 고객사 한 곳을 끌어들이고 처음으로 서비스를 시작한 날 데이터 서버에 오류가 발생했다. 모든 직원과 인턴이 아침부터 식당들을 누비며 종이 장부를 나눠줬다. “누가 얼마 먹었는지 장부에 기입하면 나중에 비용을 정산하겠다”며 식당 상인들을 다독였다. 조 대표는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 특유의 끈끈한 애사심 덕에 위기를 넘길 수 있었다”고 말했다.
공유주방을 사무실로 옮기다
벤디스에 찾아온 두 번째 기회는 평창 동계올림픽이었다. 정보통신기술(ICT) 올림픽을 지향한 올림픽 조직위원회가 디지털 식권을 도입하기로 결정하고 사업자를 찾았다. 사고 없이 올림픽을 치러낸 뒤 기업뿐 아니라 공공부문에서도 함께 일해보자는 연락이 오기 시작했다. 조 대표는 “벤디스가 공공부문 고객을 다수 확보할 수 있었던 것은 평창 동계올림픽 덕분”이라고 설명했다.
벤디스의 비즈니스 모델은 ‘카피’가 어렵지 않아 보인다. 종이 식권을 온라인에 옮겨 놓은 게 전부여서다. 조 대표의 설명은 다르다. 식비 지급 규정이 제각각인 고객사의 요구를 맞추려면 상당한 노하우가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낮 12시에서 오후 1시 사이에만 7000원을 결제할 수 있게 한 기업이 있는가 하면 시간에 관계없이 월 단위로 15만원까지 쓸 수 있게 한 공공기관도 존재한다는 얘기다.
조 대표는 “개발자가 처음 입사해 업무를 파악하는 데만 한 달 넘게 걸린다”며 “식당을 개척하는 노하우를 쌓는 것도 만만찮다”고 했다. 이어 “배달의민족, 산업은행, 네이버 등이 벤디스에 투자한 것도 쉬운 사업이 아니란 점을 인정했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벤디스는 최근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급증하고 있는 공유주방의 식단을 사무실로 배달해주는 사업을 시작했다. 회사 근처에 식당이 많지 않거나 ‘혼밥’을 즐기는 젊은 직원이 많은 기업이 타깃이다. 조 대표는 “올해 초 음식 배달업체 플레이팅에 투자하면서 공유주방 연계 비즈니스 모델의 초석을 다졌다”며 “앞으로도 직장인들의 먹거리와 관련한 사업을 다양하게 펼치겠다”고 강조했다.
송형석 기자 clic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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