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세계경영' 김우중 회장 보내며 기업가 정신을 돌아본다

입력 2019-12-10 17:37   수정 2019-12-11 00:15

한국 경제의 산업화와 세계화를 이끈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83)이 9일 밤 숙환으로 세상을 떠났다. 김 전 회장의 별세로 현대 정주영, 삼성 이병철, LG 구인회, SK 최종건 창업주 등 ‘1세대 기업인’들과 함께 6·25 전쟁 잿더미에서 ‘한강의 기적’을 일군 경제계 거목(巨木)들이 모두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불굴의 도전정신으로 세계 시장을 개척한 고인이 한국 경제에 남긴 족적은 크고도 깊다.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다’는 자서전 제목처럼 김 전 회장의 일생은 끝없는 도전의 연속이었다. 30세 때인 1967년 직원 5명으로 대우실업을 창업해 ‘샐러리맨 신화’의 첫 싹을 틔웠다.

김 전 회장은 1981년 ‘세계경영’을 기치로 내걸고 아프리카 오지와 갓 개방을 시작한 동구권 등 세계 곳곳에서 한국의 경제영토를 넓혔다. 1998년엔 대우 해외 현지법인만 396개에 달했고, 당시 대우 수출액은 우리나라 전체 수출의 14%를 차지했다. 그의 ‘세계경영’이 없었더라면 한국 기업의 글로벌화는 더 늦어졌을 것이다.

김 전 회장은 1997년 말 닥친 외환위기로 그룹이 붕괴되는 아픔을 겪었지만 시련도 그의 기업가 정신만은 꺾지 못했다. 마지막 순간까지 ‘글로벌 청년 사업가 양성 사업’에 열정을 쏟았다. “해보지도 않고 안 된다는 생각을 버리고 꼭 해내겠다는 집념을 가져달라”며 후배 기업인들을 독려했다. 그가 보여준 불굴의 도전정신은 시간과 장소를 초월해 본받을 만한 중요한 가치다.

우리 경제는 지금 전례없는 위기와 도전에 직면해 있다. 저물가·저성장으로 경제 활력이 급속도로 위축되고 있는 가운데 자동차 조선 등 주력 산업들은 부진을 벗어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인공지능(AI), 빅데이터, 공유경제 등 신산업은 각종 규제 탓에 경쟁국들에 밀리고 있다. 반도체와 정보기술(IT) 등 비교 우위 산업에서도 중국 등 후발주자들의 추격이 거세다.

그런데도 정부와 여당은 최저임금 급속 인상, 획일적인 근로시간 단축, 지나치게 까다로운 환경·안전 법규 강화 등 반(反)기업 정책으로 기업 발목을 잡고 있다. 경제 침체와 취업난으로 한국의 미래인 청년들은 ‘삼포(三抛: 연애·결혼·출산 포기)’를 넘어 집·경력·희망·인간관계까지 포기한 ‘칠포(七抛)세대’라고 자조하고 있다. 이대로는 대한민국에 미래가 없다.

이럴 때일수록 절실하게 필요한 게 기업가 정신이다. 경제 위기를 심화시키고 기업 경영 의욕을 꺾는 반(反)기업·친(親)노조 정책이 극성을 부린다고 대한민국의 생존과 미래를 포기할 수 없다. 자원이 빈약한 우리 경제가 맨손에서 반도체부터 철강·조선·전자·자동차까지 주요 산업에서 세계적인 기업들을 일궈낸 것은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았던 기업가 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압축성장 시대와 사회·경제적 분위기가 달라졌지만 기업 성공 방정식만은 예나 지금이나 크게 다르지 않다. 실패를 감수하고 끊임없이 새로운 제품과 서비스를 창출하려는 기업가 정신에 기대할 수밖에 없다. 죽는 날까지 기업가 정신을 강조했던 김 전 회장의 불굴의 정신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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