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출산·고령화와 이에 따른 인구 감소가 ‘산업의 판’을 흔들고 있다. “인류 최대의 혁명은 산업혁명이나 정보기술(IT)혁명이 아니라 ‘인구구조 변혁’이 될 것”(피터 드러커)이란 예측이 현실화되고 있는 셈이다. 이미 산업현장에서는 내수시장 축소, 탈(脫)한국 가속화, 노인 비즈니스 성장 등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인구구조 변화라는 메가트렌드에 올라타지 못한 대기업은 도태되고 내수시장만 바라보는 중소기업은 소멸할 것이란 잿빛 전망도 나온다.
꽃피우는 실버산업
저출산·고령화가 가장 먼저 뒤흔들 산업분야는 소비재다. 제일 눈에 띄는 건 실버산업의 부상이다. 65세 이상 고령자가 급속하게 늘어나는 걸 눈치 빠른 기업들이 놓칠 리 없다. 올해 768만 명인 고령인구는 △2025년 1051만 명 △2030년 1298만 명 △2035년 1523만 명 △2040년 1722만 명으로 급증할 전망이다.
업계에선 80세 이상 인구 200만 명 시대를 맞는 내년부터 한국 노인 비즈니스가 급성장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통계청은 내년 고령친화산업 규모가 5년 전에 비해 83% 성장한 125조원에 육박할 것으로 내다봤다.
현대그린푸드 아워홈 등 외식·급식업체는 씹기 쉬운 고기 등 ‘연화식(軟化食)’에 투자를 늘리고 있다. 위니아딤채는 밥의 익은 정도를 1~5단계로 설정할 수 있는 밥솥을 최근 출시했다. 이가 안 좋은 노인들이 무른 밥과 죽을 손쉽게 만들 수 있도록 설계한 게 특징이다.
대기업은 해외시장 비중을 늘리는 데 혈안이다. 쪼그라드는 내수시장만 바라봐선 답이 안 나오기 때문이다.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등 해외 매출 비중이 60~80%에 달하는 대기업들은 ‘인구대국’으로 떠오르는 아프리카를 뚫는 데 공을 들이고 있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10~20년 뒤 내수시장은 ‘테스트 베드’ 정도의 역할로 축소될 것”이라고 말했다.
글로벌 생산기지도 각 나라의 인구구조 변화에 발맞춰 재설계되고 있다. 국내 대기업들은 최근 중국에서 베트남 인도네시아 인도로 생산기지를 옮기고 있다. 삼성전자는 지난 10월 중국에 남겨둔 마지막 스마트폰 생산 공장(후이저우)을 폐쇄하고 베트남과 인도 생산을 늘리기로 했다.
생산기지 이전에는 중국의 고령화가 한몫했다. 중국 중타이증권에 따르면 베이징과 산둥성 일부 지역은 고령사회(65세 이상 인구 14% 초과)에 진입했다. 중국의 생산연령인구(15~64세)는 2013년 10억582만 명에서 2017년 9억9357만 명으로 줄었다. 일할 사람의 감소는 인건비 상승을 불렀다. 2018년 기준 중국 제조업 근로자의 월 평균임금(493달러)은 베트남(227달러)의 두 배를 넘는다.
“내수만 바라보면 죽는다”
저출산·고령화가 새로운 기회가 될지, 재앙이 될지는 각 기업이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달려 있다. 메가 트렌드를 읽고 미리 준비한 기업과 그렇지 못한 기업에 똑같은 미래가 열릴 리 없다.
이런 점에서 해외시장 비중 확대는 첫 번째 대책으로 꼽힌다. 평균 16개국에 수출하는 독일 강소기업(히든챔피언)처럼 한국 중소기업도 시장 다변화에 나서야 한다는 얘기다. 오정근 건국대 금융IT학과 특임교수는 “내수시장이 쪼그라들 가능성이 큰 만큼 중견·중소기업도 최소 매출의 30% 정도는 해외에서 나올 수 있도록 준비해야 한다”며 “10~20년 뒤에는 해외 진출 여부가 중소기업들의 생사를 가를 핵심 요인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인구구조 변화를 감안해 적극적으로 신사업에 뛰어들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국에 앞서 초고령사회에 진입한 일본에선 수많은 기업이 ‘돌봄 서비스’ 등 실버산업으로 영역을 넓히고 있다. 일본 최대 유통업체인 에이온(Aeon)은 노년층 전용 쇼핑몰을 운영하고 있다. 포스코경영연구원은 의약품, 건강관리기기, 여행, 재교육, 실버타운 등을 ‘주목할 만한 실버사업’으로 꼽았다.
황정수/김보라/정지은 기자 hj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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