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싸움 아닌, 멋진 경기의 조건

입력 2019-12-11 18:11   수정 2019-12-12 00:04

길거리에서 두 사람이 싸운다. 폭행죄로 징역형이나 벌금이 부과되며 주변의 지탄까지 받는다. 또 다른 두 사람이 싸움을 한다. 이번에는 가슴에 국기를 달고 글러브를 끼고 링에 올랐다. 우리는 이를 스포츠라 부르며 환호한다.

국가대표 선수도 링 밖에서 주먹질을 하면 범법자가 되고, 무술인도 도복을 벗고 드잡이를 하면 폭력배가 된다. 하지만 명분과 규칙, 예의와 존중을 갖춘 공식적 싸움은 모두의 응원을 받는 경기가 된다.

국가사회기관 신뢰도 조사에서 국회는 어김없이 최하위를 기록하고 있다. 국민이 자신의 대표인 국회를 믿지 못하는 것이다. 왜 믿지 못하냐고 물으면 “맨날 싸움만 하기 때문”이란 답변이 돌아온다. 국회의원의 한 사람으로서 부끄럽고 안타깝다.

국회의원은 서로 다른 지역, 서로 다른 유권자를 대표해 서로 다른 정당의 이념과 가치를 대변하는 사람이다. 한정된 자원과 제한된 제도 속에서 치열한 경쟁은 불가피하다. 따라서 정치는 바로 싸움이다. 그런데 국회의 싸움이 국민의 지탄을 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원칙과 규칙이 없고, 국민 이익이 아니라 패권의 이익을 위해 싸우며, 왜 싸우는지 모를 일로 싸우기 때문이다.

국회의 싸움이 길거리 주먹다짐이 되지 않고 유권자를 대표한 링 위의 멋진 경기가 되기 위해 몇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첫째, 상대를 인정해야 한다. 나와 대면하고 있는 상대 역시 유권자들의 대표란 점을 인정하고, 그만의 목표가 있음을 인정할 때 타협의 여지가 생긴다.

둘째, 원칙과 규칙을 지켜야 한다. 싸움과 스포츠의 차이가 바로 여기에 있다. 국회의 룰은 국회법이다. 국회법은 정치적 협의의 여지를 남겨두면서도 무엇을, 언제까지, 누가 처리해야 하는지를 기술하고 있다. 협의가 안 되면 법대로 하면 되건만 정작 우리는 이것을 지키지 않는다.

셋째, 국회 안에서 싸워야 한다. 국민이 배지를 달아줬으면 국회 안에서 싸워야지 장외 투쟁은 스스로 그 지위를 저버리는 일이다. 넷째, 자신의 체급에 맞는 싸움을 해야 한다. 예를 들어 의석 30석 정당은 300석 중 10%만큼의 표결권을 갖는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다섯째, 품격을 갖춰야 한다. 국회의원은 십수만 주민의 대표다. 언행 하나하나가 유권자들의 품격이 된다.

내년도 예산안이 처리됐다. 의원과 의원, 정당과 정당, 국회와 정부 간의 치열한 싸움이다. 이 싸움이 과연 국민의 눈에 어떻게 비쳤는지 국회 스스로 되돌아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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