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일 오후 9시 내년도 예산안이 국회에서 의결되자 각 당 의원들이 보낸 보도자료가 쏟아졌다. 하나같이 자신들이 몸담은 지역구를 위해 ‘나랏돈’을 추가로 따냈다는 걸 자랑하는 내용이었다. ‘당진~서산 국지도 건설비 20억원 증액(어기구 더불어민주당 의원)’ ‘구미 로봇직업교육센터 설립 예산 15억원 유치(장석춘 자유한국당 의원)’ 등이다. 국회의 예산심사에 대해 ‘해야 할 일(불요불급한 예산 삭감)은 안 하고 하지 말아야 할 일(민원성 예산 신설·확대)만 한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SOC·농수산 예산 대폭 증액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2020년 예산은 당초 정부안(513조5000억원)보다 1조2000억원 줄었다. “대폭 삭감하겠다”고 벼르던 한국당이 예산심사에서 배제되면서 정부안의 골격은 그대로 유지됐다. 내년 예산(512조3000억원)은 올해(469조6000억원)보다 9.1% 늘어난 사상 최대 규모다.
그나마 달라진 건 보건·복지·고용, 일반·지방행정 예산을 2조6000억원가량 줄이는 대신 사회간접자본(SOC)과 농림·수산·식품을 1조4000억원가량 늘린 것이다. SOC와 농수산은 대표적인 지역 민원예산으로 꼽힌다. 안성~구리고속도로, 함양~울산 고속도로 등 수십 개 프로젝트 사업비가 일제히 상향 조정되면서 SOC에서만 9000억원이 확대됐다. 농어촌지역 의원들의 ‘입김’으로 공익형 직불제 예산은 2조2000억원에서 2조4000억원으로 불어났고, ‘어촌 뉴딜’ 사업비도 363억원 증액됐다. 각 의원들이 표와 직결되는 SOC와 농어촌 예산을 늘리기 위해 국민에게 골고루 영향을 주는 복지와 행정을 희생양으로 삼은 셈이다.
인재 양성 대신 국회 리모델링
교육예산으로 분류된 항목 중 상당수도 실제로는 지역경제 활성화와 무관치 않다고 전문가들은 설명한다. 당초 정부안에 없던 대학 건물 리모델링과 신·증축이 대거 포함된 게 그렇다. 경북대 간호대 신축, 제주대 약대 증축, 목포대 도서관 미관개선 공사, 한밭대 창의혁신실습관 신축, 창원대 스마트공장 보수, 강원대 친환경 지료포장소재센터 신축 등 각 지역 국립대 건물을 새로 짓고 개보수하는 데 수백억원이 투입된다. 국회는 당초 정부 계획에 없던 국회 본관 리모델링(23억원)과 사랑재 환경개선(14억원)에도 목돈을 배정했다.
보건·복지·고용은 국회가 이런 데 쓸 돈을 마련하기 위해 감액대상으로 삼은 분야다. 563억원이 줄어든 노인요양시설 확충사업을 비롯해 △저소득층 미세먼지 마스크 보급(-114억원) △취업성공패키지 지원(-130억원) △사회보험 사각지대 해소(-139억원) 예산이 깎였다.
‘대한민국 브레인’을 키우는 사업도 영향을 받았다. 이공계 전문기술인력 양성(-22억원), 혁신성장 고급인재 지원(-22억원), 중소기업 핵심인력 성과보상기금(-47억원)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한 경제단체 임원은 “혁신 인재를 육성하는 데 쓸 돈을 줄여 국회 건물 리모델링에 쓰겠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부대의견에도 ‘총선 표심’ 담아
국회는 예산 수정안의 ‘부대의견’에도 총선 표심을 담았다. ‘정부는 농어촌상생협력기금에 기업 참여를 독려하는 방안을 마련한다’는 7항이 대표적이다. 정부가 지난 10월 “향후 세계무역기구(WTO) 협상 때부터 개발도상국 혜택을 주장하지 않겠다”고 결정하면서 불거진 ‘성난 농심’을 대기업 기부금으로 달래자는 발상이다. 한 대기업 임원은 “정부와 국회의 기금 출연 압박이 우려된다”고 전했다.
아예 구체적인 지역 사업을 도와주라는 식으로 정부에 압력을 넣는 내용도 있다. ‘국토교통부는 경기 광주시 오포읍 및 성남 분당구의 교통정체 해소를 위해 경기도가 도시철도망 구축계획 수립 시 적극 협조한다(’48항)가 그런 예다. 경기 광주는 임종성 민주당 의원, 분당은 같은 당 김병관(갑)·김병욱(을) 의원 지역구다.
오상헌/이태훈/성상훈 기자 ohyea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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