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은 국장급 간부들은 이날 보고서 발표 직후 간담회에서 “은행 여·수신금리 하락은 주요 장·단기 시중금리가 3월부터 기준금리 인하 기대를 미리 반영하면서 빠르게 하락했다”고 진단했다. 통화정책 결정이 선제적이었고 결실을 보고 있다는 얘기다.
하지만 시장 전문가들과 경제학자들은 한은의 내부 평가에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다. 한 증권사 연구원은 “사상 최저로 내려간 기준금리와 달리 시중금리가 뛰면서 통화정책 실효성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고 말했다. 대표 시장금리인 3년 만기 국고채 금리는 지난 8월 19일 사상 최저인 연 1.09%에서 지난달 4일 연 1.55%까지 뛰는 등 상승세를 이어갔다. 한은이 10월 기준금리를 사상 최저인 연 1.25%로 내렸지만 오름세는 꺾이지 않았다. 시중금리가 뛰자 가계대출 금리도 8월 이후 덩달아 상승 곡선을 그리고 있다.
“기준금리 인하로 가계와 기업의 자금조달 여건이 개선됐다”는 한은의 자평도 안팎에서 논란을 불러왔다. 조동철 한은 금융통화위원회 위원은 최근 한 정책 심포지엄에서 “기준금리가 역대 최저지만 소비·투자에 더 직접적 영향을 미치는 실질금리(명목금리에서 물가상승률을 뺀 수치)는 치솟았다”고 평가했다. 조 위원은 현재 한국의 실질 기준금리는 연 0.75%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주요 회원국 가운데 터키 멕시코 등을 제외하고는 가장 높다고 설명했다.
실질금리가 치솟으면서 가계·기업이 1000조원에 육박하는 부동자금을 쌓아둔 채 소비·투자를 미루고 있다. 한국의 설비투자는 지난해 11월 이후 올 10월까지 12개월 연속 감소했다. 소비 위축도 갈수록 심화되는 추세다. 한은은 올해 민간소비가 전년 대비 1.9% 증가할 것으로 내다봤다. 전망대로라면 2013년(1.7%) 이후 가장 낮은 증가율이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를 비롯한 경제학자들은 이를 놓고 한국 경제가 이른바 ‘유동성 함정’에 빠져들었다고 평가하고 있다.
한은은 최근까지 ‘통화정책 실기(失期)론’에 시달렸다. 경기가 정점(2017년 9월)을 찍고 하강국면에 진입한 지난해 11월 되레 기준금리를 올리며 경기를 더 얼어붙게 했다는 비판이다. 이 같은 실기를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냉정한 정책 평가가 있어야 한다. 정책 성과를 자화자찬하는 식이어서는 곤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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