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컨설팅 회사인 챌린저, 그레이앤드크리스마스(CG&C)에 따르면 올 들어 지난 11월까지 미국 기업에서 1480명의 CEO가 회사를 떠났다. 이는 11개월 동안의 기록으로는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인 2008년(1484명) 이후 가장 많은 수준이다. 12월에 5명만 더 퇴진하면 연간 최다 기록을 경신한다.
이달 들어서만 알파벳(구글의 지주회사)의 래리 페이지, 유나이티드항공의 오스카 무노즈, 익스피디아의 마크 오커스트롬이 사임하는 등 ‘CEO 교체’가 이어지고 있어 사상 최다 기록을 경신할 것이 유력해 보인다.
이미 월간 기록은 지난 10월에 바뀌었다. 10월 한 달간 위워크의 애덤 노이먼, 쥴랩스의 케빈 번스, 언더아머의 케빈 플랭크, 나이키의 마크 파커, 맥도날드의 이스터브룩 CEO까지 172명이 물러나 신기록을 세웠다.
내년 1월엔 ‘미국 석유왕’으로 불리는 해럴드 햄 콘티넨털리소스 창립자 겸 CEO가 52년 만에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다. 그는 CEO 자리에서 내려오고 이사회 의장직만 유지한다.
CG&C는 올해 CEO 교체가 많은 이유로 크게 세 가지를 들었다. 먼저 기존 경영 환경이 급변하면서 새로운 리더십에 대한 수요가 늘어났다. 인공지능(AI) 등 신기술이 모든 산업에서 파괴적 혁신을 이뤄내고 있는 가운데 반독점, 친환경 등 각종 규제 리스크도 증가하고 있다. 특히 올해 미국과 각국 간 무역전쟁이 확산되면서 기존 글로벌 공급망이 붕괴되는 등 불확실성이 커지자 새로운 환경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춘 경영진을 수혈하려는 요구가 커졌다는 것이다.
구글 창업자인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의 사퇴가 대표적이다. 구글에 대한 반독점 조사 등이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이들은 “이제 기업 지배구조를 단순화해야 할 시점”이라며 사퇴를 발표했다.
앤드루 챌린저 CG&C 공동 대표는 CNBC와의 인터뷰에서 “올해 CEO 물갈이가 사상 최대 규모로 이뤄진 것은 거의 모든 산업에 걸쳐 공급망이 무너진 측면이 크다”고 말했다.
두 번째는 역설적이지만 미국 경기가 지난 10년간 지속적으로 호조를 보인 게 이유다. 기업들의 재무가 탄탄해지면서 다른 회사의 능력있는 CEO를 영입하는 사례가 많아졌다는 분석이다.
리더십에 대한 윤리적 기준이 강화되면서 미투 운동 등 각종 스캔들로 인한 불명예 퇴진이 증가한 것도 주요 원인이다. 나이키의 파커 CEO는 도핑 스캔들을 방조했다는 혐의가 제기돼 물러났고, 맥도날드의 이스터브룩은 직원과의 불륜이 밝혀져 쫓겨났다. CBS의 레슬리 문베스도 성추문으로 불명예 퇴진했다.
뉴욕=김현석 특파원 realist@hankyung.com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