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이 신하에게 달력을 선물한 이유

입력 2019-12-12 14:59   수정 2019-12-12 15:15

조선시대에 책력(달력)을 반포하는 것은 중국 황제의 권한이었다. 조선은 해마다 중국에 사신을 보내 책력을 받아왔다. 조선의 왕은 새해가 되면 상징적으로 신하들에게 책력을 하사했다. 신하들은 받은 책력을 지인들과 나눴다. 백성들은 책력을 기준으로 제삿날을 정했다. 권력자들은 달력을 선물함으로써 자신의 시간 속으로 사람들을 불러들이는 효과를 거뒀다. 황제는 조선을 자신의 시간으로 불러들였고, 조선의 왕은 백성들을 자신의 시간으로 불러들였다.

김풍기 강원대 국어교육과 교수는 <선물의 문화사>에서 조선시대 임금과 사대부, 민초들의 삶을 풍요롭게 한 19가지 선물에 대한 기록과 의미를 소개한다. 관련된 풍속화와 산수화, 고문서, 실물 사진 등을 다채롭게 보여준다. 당시 선물이란 대부분 경제적 틈새를 메우는 기능을 했다. 사람들은 선물을 주고받으며 일상의 부족분을 채웠고 어려운 처지의 주변인들을 도왔다. 조선시대 선물 문화를 ‘선물경제’라 부르는 이유다.

달력이 자신의 시간 속으로 타인을 부르는 초대장이었다면, 지팡이는 걸림 없이 다니다가 자신에게 찾아와 달라는 의미를 지녔다. 버드나무는 새 잎이 나거든 나를 생각해 달라는 마음을 담았고, 차는 속세의 번잡함을 내려놓고 잠시 쉬라는 권고였다. 빈부와 관계없이 선물로 자주 애용한 것은 술이었다. 한잔 기울이면 세상사 시름을 잠시 잊었으니, 이보다 훌륭한 선물을 찾기 쉽지 않았을 것이다.

저자는 죽음을 앞두고 재산을 남기는 유언장인 ‘분재기(分財記)’도 소개한다. “내 나이 50세가 되니 병이 든 데다 슬하에 자식이 없어 조카딸을 데려다 함께 살았다. 여러 가지로 효성스러운 봉양을 받아 정의(情義)가 깊고 중하였다. 이에 논 16마지기를 남겨준다”는 글에는 물질적 선물이 후손들에게 전하는 자신의 정과 의라는 뜻이 담겼다. 부모가 돌아가실 때 분재기를 남기지 않았을 경우 자녀들은 3년상을 치른 후 합의에 의해 재산을 분배해야 했다. 3년상을 치르기 전에 재산을 나눠 가지면 처벌받았다. (느낌이있는책, 296쪽)

유재혁 기자 yooj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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