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40兆 신탁' 지켰다…"안전장치 강화할 것"

입력 2019-12-12 17:23   수정 2019-12-13 01:25


“은행 신탁의 90%가 넘는 지수형 상품을 계속 팔 수 있게 돼 다행입니다.”

한 시중은행장은 12일 금융위원회가 은행의 고위험 주가연계신탁(ELT) 판매를 허용하기로 방침을 바꾼 데 대해 환영의 뜻을 나타냈다. 예·적금보다 높은 금리를 앞세워 자산가를 끌어모으는 수단인 ELT 시장이 무너질 위기는 모면했기 때문이다.

전제조건 겹겹이 달아 ELT 허용

금융위는 지난달 해외금리 연계 파생결합증권(DLS) 사태 재발방지 대책의 초안을 발표하면서 고위험 사모펀드는 물론 신탁까지 은행 판매를 금지하기로 했다. 은행들은 DLS와 직접적 연관이 없고 판매 규모도 훨씬 큰 신탁까지 막는 것은 ‘과잉 규제’라고 반발해 왔다.

은성수 금융위원장은 이날 주요 은행장들과 간담회를 연 뒤 은행권 요구를 수용하기로 입장을 정리했다. 김정각 금융위 자본시장정책관은 브리핑에서 “ELT의 기초자산인 주가연계증권(ELS)은 원칙적으론 은행 판매가 금지되는 고난도 투자상품”이라면서도 “은행의 특수성과 소비자의 접근성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은행권 건의를 수용했다”고 설명했다.

금융위는 은행 판매가 허용되는 ELT에 여러 가지 전제조건을 달았다. 우선 기초자산은 5개 대표 주가지수(코스피200, S&P500, 유로스톡스50, 홍콩항셍지수, 일본 닛케이225)여야 한다. 또 공모로 발행되고 손실배수가 1 이하인 파생결합증권으로 한정했다. 쉽게 말해 DLS처럼 금리가 살짝만 움직여도 손실이 크게 벌어져선 안 되고, 주가지수 하락률과 원금 손실률이 정비례해야 한다는 뜻이다. 이와 함께 일반투자자에게 녹취·투자숙려제를 적용하고, 신탁상품 설명서와 별개로 공모 ELS에 대한 투자설명서도 반드시 제공하도록 했다.

ELT 판매 규모는 지난달 말 기준(약 37조~40조원 추정) 이내로 제한했다. 금융감독원은 내년 중 은행 신탁에 대한 테마검사를 벌일 계획이다.

‘고난도 상품’ 범주 규정도 마쳐

금융위는 이날 최종안에서 은행 판매가 금지되는 ‘고난도 금융상품’의 구체적 기준도 확정했다. 파생금융상품 등이 포함된 복잡한 상품이면서 원금 손실률이 20%를 초과할 수 있는 상품으로 규정했다. 다만 기관투자가 간 거래이거나 거래소에 상장된 상품은 고난도 금융상품 범주에서 제외하기로 했다. 이 기준을 적용하면 상품 구조가 복잡해도 원금의 80% 이상이 보장될 경우 은행에서 판매할 수 있다.

주식, 채권, 부동산 등 실물투자 상품이나 주식형·채권형·혼합형 펀드, 주가지수를 추종하는 펀드 등 단순한 구조의 상품은 원금 손실 위험에 관계없이 고난도 투자상품이 아니다. 은행에서 팔 수 있다는 얘기다.

임현우/정소람 기자 tardi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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