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디아라비아가 이란 등 중동 역내 숙적들과 관계 개선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 모양새다. 국영 석유회사 아람코 상장 직후라 역내 갈등이 자국 경제에 타격을 줄 수 있다는 계산에서다.
12일(현지시간)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사우디와 유럽, 미국 외교·정치 소식통을 인용해 사우디가 이란 등과 관계 개선을 위한 물밑 대화 중이라고 보도했다. 사우디와 이란은 최근 수개월간 직접 소통하고, 오만 쿠웨이트 파키스탄 등의 중개를 통해서도 긴장 완화를 위한 대화를 벌인 것으로 알려졌다.
바흐람 가세미 프랑스 파리 주재 이란 대사는 WSJ에 “이란이 상호 불가침과 협력 약속을 담은 평화 계획안을 사우디에 전달했다”고 말했다. 사우디의 한 관료는 “사우디가 이란을 신뢰하는 것은 아니지만, 최소한 앞으로 일어날 수 있는 공격을 중단시키기 위한 합의엔 도달하길 바란다”고 했다.
사우디와 이란은 오랜 역내 라이벌 국가다. 그러나 올들어 중동 일대에서 유조선과 석유시설을 놓고 피격 사건이 잇달아 벌어지면서 사우디가 입장을 바꾼 것으로 알려졌다. 사우디의 한 관계자는 “지난 9월14일 사우디 석유시설이 피습된 게 기존 판도를 바꾸는 ‘게임 체인저’가 됐다”고 설명했다. 당시 핵심 석유시설 두 군데가 피습돼 사우디는 일일 산유량 절반 가량이 깎였다.
또다른 사우디 관료는 WSJ에 “사우디 정부는 아람코 기업공개(IPO) 때문에 이란과 대화에 돌입할 수 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사우디는 아람코를 사우디 타다울 증시에 상장해 지난 11일 첫 거래에 들어갔다. 아람코 IPO는 사우디 실권자인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사진)가 주도하는 사회개혁 정책의 핵심 축이다. 아람코 IPO를 통해 대규모 개혁·개발 프로젝트 자금을 조달할 예정이라서다.
WSJ은 “사우디와 이란과의 갈등이 커질 것이란 전망이 퍼질 경우 사우디 석유 수출이 위태로워질 수 있고, 해외 투자자들도 투자에 선뜻 나서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미국과의 동맹 관계가 일부 이전같지 않다는 점도 영향을 미쳤다. WSJ에 따르면 미국 국회의원들은 예멘 내전과 언론인 자말 까쇼끄지 살해 사건 등에 대해서 사우디에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지난주엔 사우디 공군 장교가 미국 플로리다 펜서콜라의 군사기지에서 총기를 난사해 3명을 살해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WSJ는 “미국 의원들은 최근 동맹으로서의 신뢰성을 놓고 사우디에 새로운 질문을 하고 있다”고 짚었다.
중동권과 미국 관료들에 따르면 사우디는 이란이 후원하는 예멘 후티 반군과도 비밀 회담을 열었다. 사우디는 후티 반군과 반목 중인 예멘 정부군을 지원하고 있다. 서방측 한 관계자는 “사우디와 후티 반군 양측이 충돌을 최소화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핫라인을 열었다”고 말했다.
한 미국 관료는 “사우디가 기존 갈등 중인 사안에 대해 보다 실용적 접근에 나서고 있다”고 분석했다.
선한결 기자 alway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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