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중국이 1단계 무역 합의에 도달했다. 지난해 3월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중국에 대규모 관세를 매기겠다고 선전포고한 지 21개월 만이다. 관세를 부과하기 시작한 지난해 7월을 기점으로 하면 17개월 만이다. 이번 합의는 ‘미니딜’이며 일종의 휴전이다. 미국이 중국에 부과하고 있는 관세 전부를 예전으로 되돌리지는 않았다는 점에서 종전은 아니다. 하지만 확전을 피했다는 것만으로도 세계 경제는 ‘무역전쟁발 불황’ 공포에서 일단 벗어나게 됐다.
1단계 합의안의 핵심은 미국의 관세 철회·축소와 중국의 미국 농산물 구매다. 월스트리트저널(WSJ), 블룸버그 등 미 언론에 따르면 미국은 15일 예정된 1600억달러어치 중국 제품에 대한 15% 관세 부과 계획을 철회했다. 2500억달러어치에 대한 기존 관세(25%)는 유지하고 1100억달러어치 제품 관세는 15%에서 절반인 7.5%로 축소하기로 했다.
대신 중국은 내년에 미국 농산물 500억달러어치를 구매하기로 했다. 미·중 무역전쟁 발발 전인 2017년 중국의 미국 농산물 수입액은 200억달러가량이었다. 중국은 지식재산권 보호, 금융시장 개방 확대와 위안화 환율조작 금지에도 합의했다. 미국의 기존 관세 축소에 맞춰 중국도 미국 제품에 부과한 관세를 동일 비율로 축소할 가능성이 높다. 중국은 1100억달러어치 미국 제품에 5~25% 관세를 매기고 있다.
눈에 띄는 건 관세 원상복구(스냅백) 조항이다. 미국은 중국이 합의를 위반하면 축소·철회한 관세를 원위치하는 스냅백 조항을 두기로 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와 관련, 최근 WSJ는 미국이 중국에 제시한 조건 중엔 중국의 미국 농산물 수입액을 분기별로 평가해 합의 수준보다 10% 이상 모자랄 경우 스냅백 조항을 적용하는 방안이 들어 있었다고 전했다. 이 조항이 최종 합의문에 포함됐다면 3개월마다 중국의 농산물 구매액을 두고 미·중 갈등이 재발할 여지가 있다.
미·중은 지난 10월 11일 고위급 협상에서 1단계 협상에 ‘구두합의’한 뒤 구체적인 합의 조건을 놓고 지루한 힘겨루기를 해왔다. 백악관 내 일부 대중 강경파는 내년 11월 대선 이후로 합의를 미루고 중국을 더 압박해야 한다고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트럼프 대통령의 자문을 맡은 마이클 필스버리 허드슨연구소 선임연구원은 뉴욕타임스(NYT)에 “이번 합의는 역사적 돌파구”라고 말했다. 하지만 NYT는 “이번 합의는 ‘베이징이 계속 버티면 트럼프 행정부가 관세를 상당 폭 되돌릴 것’이라고 주장해온 중국 정부 내 좀 더 국가주의적인 분파(강경파)의 승리처럼 보인다”고 평가했다.
척 슈머 민주당 상원 원내대표는 “중국 정부로부터 실질적이고 실행 가능하며 영구적인 구조개혁을 이끌어내기 위한 약속을 받는 데 실패했다”며 “미국인의 일자리와 경제 장기번영을 위험에 빠뜨릴 것”이라고 비판했다. 마코 루비오 공화당 상원의원도 트윗에서 “중국과의 단기적 합의가 더 큰 합의에 필요한 관세 지렛대를 없애게 될 것”이라고 공격했다.
미 언론은 이날 합의가 트럼프 대통령이 탄핵 정국으로 궁지에 몰린 데다 핵심 지지층인 농민들이 무역전쟁 장기화로 수출에 어려움을 겪는 가운데 나온 점에 주목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탄핵정국을 희석시키고 재선에 필요한 표밭을 다지기 위해 중국과의 합의를 서둘렀다는 얘기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합의를 미루고 15일 1600억달러어치 중국 제품에 관세 부과를 강행하면 세계 경제는 큰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미국 경제계는 이번 합의를 환영했다. 마이런 브릴리언트 미국상공회의소 부회장은 NYT에 “거대한 불확실성의 시대에 우리(미·중) 무역 관계에 긍정적인 첫걸음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팀 올릭 블룸버그이코노믹스 수석이코노미스트는 “관세를 (미국의 중국 제품 관세가 대폭 확대되기 전인) 2019년 5월 수준으로 돌리고 미·중 무역휴전이 계속되면 세계 총생산(GDP)이 0.6% 늘어날 것”이라고 밝혔다.
워싱턴=주용석 특파원 hohobo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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