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슨 총리의 보수당, 英 총선 압승 까닭은…브렉시트 장기 지연이 '보수층 결집' 불러와

입력 2019-12-15 17:54   수정 2020-03-14 00:02

‘12·12 영국 총선’ 다음날인 지난 13일 오후 런던 중심가인 레스터스퀘어. 보수당과 보리스 존슨 총리를 비난하는 플래카드를 든 수백 명의 시위대가 광장을 가득 메운 채 행진하고 있었다. 이날 총리 관저가 있는 다우닝가 10번지에서도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반대를 외치는 시위대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곳곳에서 제2 국민투표를 외치는 목소리도 들렸다. 반면 보수당과 브렉시트를 지지하는 시위대의 모습은 찾기 힘들었다.

존슨 총리가 이끄는 보수당은 12일 열린 총선에서 365석을 확보했다. 1987년 이후 32년 만에 거둔 최대 승리다. 각종 여론조사기관 예측치를 뛰어넘는 압도적 승리였다. 제1야당인 노동당은 203석을 얻는 데 그쳐 1935년 이후 84년 만에 최악의 패배를 당했다.


보수당의 압승은 2016년 6월 국민투표 시행 이후 3년6개월여를 끌어온 브렉시트 논란에 지친 영국 국민이 몰표를 준 덕분으로 분석된다. 브렉시트 단행을 핵심 공약으로 내건 보수당과 달리 노동당은 제2 국민투표를 치르겠다는 공약을 내놨다.

하지만 총선 다음날 런던 한복판에서 잇따라 벌어진 대규모 시위 광경은 이런 총선 결과와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이유가 뭘까. 2016년 6월 브렉시트 국민투표 이후 런던에선 하루가 멀다 하고 브렉시트 관련 시위가 열렸다. 대부분 유럽연합(EU) 잔류를 지지하는 시위였다. 브렉시트 찬성파의 시위도 있었지만 통상 규모와 횟수에선 잔류 지지 시위와 비교조차 되지 않았다. 트위터와 페이스북 등 온라인상에서도 EU 잔류를 지지하는 목소리가 압도적으로 높았다.

이렇다 보니 국내를 비롯한 해외에선 브렉시트에 대한 ‘착시 효과’가 적지 않았다는 지적이 나온다. EU 탈퇴를 선택한 국민투표가 영국 국민의 충동적인 선택이라는 분석까지 나오기도 했다. 상당수 영국인이 EU 탈퇴 선택을 후회하고 있다는 보도도 적지 않았다. 종종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비교되는 존슨 총리의 잇단 실언과 기행도 브렉시트 반대파의 단골 공격 대상이 됐다.

그러나 이번 총선 결과는 브렉시트를 영국 국민의 충동적인 선택으로 보는 건 영국 사회에 대한 이해 부족 때문이라는 사실을 잘 보여줬다. 브렉시트는 수백 년간 이어진 영국의 전통적 외교노선인 ‘고립주의’에 기반했다. 영국은 ‘하나의 유럽’을 꿈꾸는 유럽 대륙과 거리를 둔 역사적 전통이 있다. 이 같은 EU 자체에 대한 회의론에 이민자 유입에 따른 일자리 축소, EU의 각종 규제 등에 대한 불만이 겹친 게 브렉시트로 이어졌다.

올초까지만 해도 보수당과 노동당의 지지율은 큰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브렉시트 강경파인 존슨 총리가 지난 7월 취임한 뒤 지지율 격차는 두 자릿수로 벌어졌다. 영국에서도 보수 지지를 공개적으로 밝히기를 꺼리는 ‘샤이 보수’가 적지 않다. 공영 BBC는 이번 총선에서 이들이 보수당에 대거 표를 던졌다고 분석했다. 통상 런던 등 대도시가 아닌 지방에 살거나 연령대가 높을수록 보수 지지 성향이 강하다. 그동안 런던 등에서 열린 각종 시위 현장과 온라인상에서 브렉시트 및 보수당을 지지하는 모습을 보기 어려웠던 것도 이 때문이다.

제러미 코빈 대표가 내건 각종 포퓰리즘 공약도 노동당을 굴욕적인 패배로 내몬 자충수가 됐다. 대표적 급진좌파인 코빈 대표는 법인세·소득세 증세 및 기간산업 국유화, 대규모 무료 공공서비스 확대 등을 내걸었다. 노동당은 브렉시트에 대한 명확한 찬반 여부를 밝히지 않은 채 포퓰리즘 공약을 앞세워 표를 얻으려고 했다. 그러나 막대한 재정지출과 경제성장을 저해할 수 있는 이 같은 포퓰리즘 공약에 영국 국민은 차갑게 등을 돌렸다.

kkm1026@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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