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절벽…연말에도 지갑을 안 연다

입력 2019-12-24 17:30   수정 2020-10-25 1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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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를 하루 앞둔 24일 서울 창신동 문구완구시장. 연중 최대 대목이지만 가게 주인들은 한숨부터 내쉬었다. 샘터마켓 김모 사장은 “작년에는 아내와 정신없이 장사했는데 지금은 아내가 안쪽에서 자고 있다”며 한산한 거리를 가리켰다. 인근 삼영사에서 30년간 근무한 최모씨는 “매출이 작년의 절반으로 줄었다. 말도 못 하게 힘들다”며 “사람들이 갈수록 지갑을 열지 않는 것 같다”고 했다. 롯데 현대 신세계 등 주요 백화점의 아웃도어 매출(11월 1일~12월 22일)은 전년보다 3%가량 감소했다.

한국 경제의 ‘견인차’ 역할을 하는 민간소비가 얼어붙고 있다. 소비 증가율이 글로벌 금융위기를 겪은 2009년 이후 10년 만에 가장 부진한 것으로 나타났다. 내수 침체와 30~40대 취업자 감소, 치솟는 가계부채 그리고 저출산·고령화가 겹치면서 ‘소비절벽 시대’에 대한 우려도 나온다.

이날 한국은행에 따르면 올 1~3분기 민간소비(명목·원계열 기준)는 689조9496억원으로 작년 동기(674조4048억원)와 비교해 2.3% 늘었다. 이 같은 소비 증가율은 2009년 1~3분기(1.2%) 후 10년 만의 최저다. 소비는 지난해 명목 국내총생산(GDP)에서 48.0%의 비중을 차지했다. 국가 경제의 절반가량을 지탱하는 민간의 씀씀이 증가세가 둔화하면서 경기도 부진해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소비 급랭은 치솟은 가계빚 영향도 컸다. 도시근로자 가구의 이자비용 지출을 처분가능소득으로 나눈 이자상환비율이 올 3분기 3.2%로 외환위기 당시인 1999년 2분기(3.3%) 후 20년 만에 가장 높았다. 왕성하게 소비하는 생산연령인구(15~64세)는 지난해를 정점으로 올해 5만5000명 감소한 데 이어 내년에는 23만2000명 줄어든다. 권태신 한국경제연구원장은 “대외 여건 불안에 고령화라는 구조적 요인까지 더해져 소비가 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hr style="display:block !important; margin:25px 0; border:1px solid #c3c3c3" />소비 옥죄는 '가계빚·고령화'의 덫…해외여행 씀씀이도 10년 만에 줄었다

#1. 24일 서울 최대 완구 도매상가인 창신동 완구거리는 한산했다. 크리스마스 선물을 사려는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였지만 골목이 인파로 가득 찼던 예년 연말 대목과 비교하면 20~30%에 불과하다고 지역 상인들은 입을 모았다. 한 행사용품 업체 대표는 “크리스마스 대목에 이렇게 썰렁한 건 외환위기(1998년) 때 이후 처음 본다”며 “정치하는 사람들이 서민 경기가 이렇게 팍팍하다는 걸 좀 알았으면 좋겠다”고 한숨을 쉬었다. 인근 A문구사 대표는 “매출은 반의반 토막이 났는데 내년에 나아진다는 보장도 없다”며 “젊은 부모들은 클릭 몇 번으로 사버리고, 학교에선 각종 준비물을 나눠주다 보니 동네 문방구나 우리 같은 영세업체만 죽어난다”고 토로했다.

#2. 프리랜서 웹디자이너 조아정 씨는 친구들과 예정했던 해외여행을 최근 포기했다. 조씨는 매년 절친 4명이 적금을 부어 연말에 동남아시아를 찾았지만 올해는 수입이 줄다 보니 모처럼 잡힌 일을 포기할 수 없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올 1~10월 누적 여행 지급 금액은 266억9550만달러로 작년 같은 기간과 비교해 9.1% 줄었다. 한국 사람들의 해외여행 지출이 줄어든 것은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 1~10월 후 10년 만에 처음이다.


“내년 소비 1%대 증가율”

올해 소비가 얼어붙으면서 소비 증가율은 글로벌 위기 이후 최저 수준을 갈아치울 조짐이다. 한은은 올해 민간 소비(실질 기준)가 1.9% 증가하는 데 그칠 것으로 봤다. 유럽 재정위기의 후폭풍이 불거졌던 2013년 이후 가장 낮다. 2010년 4.4%에서 2010년대 중반에는 2%대로 떨어지더니 올해는 2.0%마저 깨지는 것이다. 물가를 감안한 명목 기준 민간 소비는 2% 초반으로 글로벌 금융위기 때인 2009년 이후 최저치에 머무를 전망이다.

소비 부진을 보여주는 정황은 지표 곳곳에서 뚜렷하게 나타난다. 올 3분기 가계 의류·신발 지출은 11조1886억원으로 작년 동기 대비 1.9% 감소했다. 2015년 3분기(-2.4%) 이후 가장 큰 폭의 마이너스다.

소비는 내년에도 부진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한은과 한국개발연구원(KDI)은 내년 소비 증가율이 2.1%, 한국경제연구원(1.9%)과 LG경제연구원(1.6%) 등 민간 연구원은 1%대에 그칠 것으로 봤다. 조영무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내년 수출과 투자 부진으로 제조업 취업자의 감소 추세가 이어지면서 소비에도 타격을 줄 것”이라며 “내년 30~40대 인구가 올해보다 1.3% 줄어들면서 자동차와 가전제품 소비가 감소할 것”이라고 봤다.

씀씀이 옥죄는 ‘빚폭탄’

민간 소비를 옥죄는 요인으로 가계부채와 소득 악화가 꼽힌다. 한은에 따르면 올해 3분기 말 가계신용은 1572조6599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3.9% 늘었다. 가계신용은 은행과 대부업체의 가계대출, 신용카드 할부액 등 판매신용을 합한 금액으로 가계부채를 종합적으로 나타내는 지표다.

가계부채 증가율은 2016년 11%대에서 지난해 7%대로 낮아졌고 현재 3%대까지 내려갔다. 증가율은 둔화했지만 부채의 절대 규모는 작지 않은 편이다. 통계청과 한은에 따르면 도시근로자 가구의 이자비용 지출을 처분가능소득으로 나눈 이자상환비율이 올 3분기 3.2%를 기록해 외환위기 직후인 1999년 2분기(3.3%) 이후 20년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이었다. 이 비율이 올라갔다는 것은 가계 소비 여력보다 이자 비용 부담이 늘었다는 의미다.

저물가·고령화도 악영향

둔화되는 소비자물가 상승률도 소비를 위축시키는 요인으로 꼽힌다. 소비자물가지수는 지난 8월과 9월에 사상 처음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물가 하락으로 현금 가치가 커지고 실질금리(명목금리에서 물가 상승률을 뺀 금리)가 올라가면 상대적으로 빚 부담은 늘어나고 그만큼 가계는 소비를 줄인다. 현재 실질 기준금리는 연 0.75%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주요국 가운데 최상위권이다.

저출산·고령화로 생산연령인구(15~64세)가 줄어드는 점도 소비 위축으로 이어질 전망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생산연령인구는 지난해 3764만5000명을 정점으로 올해부터 감소세에 진입했다. 2020~2024년에 생산인구가 무려 130만8000명 증발한다. 앞으로 5년 동안 대전광역시 인구(올 11월 기준 147만6955명)에 육박하는 규모가 사라지는 셈이다.

김익환/구은서 기자 lovepe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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