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막을 앞두고 연습에 한창인 두 배우를 지난 12일 예술의전당에서 만났다. 이들은 “한 해 동안 연극을 세 편 하는 것 자체가 쉽지 않은 도전”이라며 “그럼에도 무대는 내가 아프고 피폐해질 때 맞는 주사이자 심폐소생술 같다”고 입을 모았다.
“엄마의 의미 재해석한 점에 끌려”
두 배우의 인연은 깊다. 연극계에 소문난 ‘절친’이다. 두 사람은 1995년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공연한 창작뮤지컬 ‘우리집 식구는 아무도 못말려’에서 호흡을 맞췄다. 이후 각자 드라마와 연극 무대에서 활동하며 친분을 이어왔다. 지난 8~10월 공연한 연극 ‘안녕, 말판씨’에서도 주인공 욕쟁이 할머니 고애심 역을 번갈아 맡았다.
양희경은 “같은 역할을 맡다 보니 함께 무대에 서지 못하는 것은 아쉽지만 서로의 성향을 잘 알고 오랜 시간 다져온 신뢰가 깊어 연기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성병숙은 “희경이와는 성격도 전혀 다르고 역할에 대한 해석도 조금씩 다르다”며 “그래서 더블 캐스팅된 의미가 더 큰 것 같다”고 했다.
‘여자만세2’는 잘 만들어진 소극장 공연을 발굴해 재탄생시키는 예술의전당의 ‘창작키움 프로젝트’ 두 번째 작품이다. 지난해 대학로에서 초연한 작품으로 이번에 주연 배우들이 바뀌었다. 연출은 초연과 동일하게 장경섭이 맡았다. 극은 두 배우가 연기하는 이여자가 헤어진 딸 서희를 찾아오며 시작된다. 이여자는 엄마임을 숨기고 서희가 운영하는 하숙집에 하숙생으로 들어간다. 서희는 고된 시집살이를 견뎌내며 며느리와 엄마 역할을 묵묵히 해나가고 있다. 이여자는 활기차고 자유분방한 모습으로 서희의 변화를 이끈다.
두 배우가 계속된 공연 일정에도 거의 휴식 없이 ‘여자만세2’ 출연을 결심한 것은 소재 자체의 매력이 컸기 때문이다. 양희경은 “우리의 삶이 그대로 녹아 있고 누구나 쉽게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라며 “공연장에선 보기 힘든 내용인데 드라마 단막극 같은 작품을 관객들에게도 보여드리고 싶었다”고 말했다. 성병숙은 “엄마라는 내 인생의 커다란 화두를 잘 표현한 작품”이라며 “제 친딸 서송희가 이여자의 손녀 역할로 함께 나오게 돼 필연적이라고 생각했다”고 했다.
엄마의 의미를 재해석했다는 점도 높게 평가했다. 양희경은 “엄마는 늘 그 자리에 있지만 시대 변화에 따라 의미도, 형태도 조금씩 달라져왔다”며 “여자만세2는 이를 잘 그려내는 작품으로 엄마 스스로가 자신을 사랑하고 아껴야 주변 사람들도 즐거워질 수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고 설명했다.
“수평적 여성 서사 많이 다뤄져야”
이 작품에는 다양한 남자 역할을 한 명이 맡은 ‘멀티맨’을 제외하곤 모두 여성 배우가 출연한다. 서희 역엔 윤유선 최지연, 시어머니 ‘홍마님’ 역엔 김용선 정아미, 서희 딸 ‘홍미남’ 역엔 서송희 여우린이 캐스팅됐다. 이런 여성 중심의 서사에 대해 성병숙은 “반복해 올려지고 봐야 하는 것 같다”며 “그동안 수직적인 남성 중심의 서사가 많았는데 보다 수평적인 여성 서사가 많이 그려졌으면 좋겠다”고 했다.
두 배우는 앞으로도 연극 무대에 꾸준히 오를 생각이다. 성병숙은 “연극판이 아직 어렵지만 후배들과 함께 작업하는 게 정말 좋다”며 “나 자신도 낡아지지 않는 것 같다”고 했다. 양희경도 고개를 끄덕이며 이렇게 말했다. “드라마와 달리 연극을 통해선 함께한 사람들과 오랜 시간 유대관계를 지속할 수 있어요. 신체뿐 아니라 정신에도 심폐소생술이 필요할 때가 있잖아요. 무대를 통해 후배들에게 그런 걸 해줄 수 있는 선배로 남고 싶습니다.”
김희경 기자 hkki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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