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中·日에서 허용하는 신사업, 한국만 막으면 어떻게 되겠나

입력 2019-12-16 17:42   수정 2019-12-17 00:14

일본 자동차회사 혼다가 내년 여름부터 고급차종 ‘레전드’ 일부 모델에 ‘레벨 3’ 자율주행기술을 적용키로 했다. 미국 구글의 자율주행차 자회사인 웨이모가 작년 말 세계 최초로 ‘자율주행 택시서비스’를 선보인 데 이은 또 하나의 중대한 전진이 일본 기업에 의해 이뤄졌다. 2030년까지 ‘미래차 경쟁력 1등국’을 목표로 세운 한국을 초조하게 만드는 소식이다.

‘레전드’에 적용되는 자율주행 ‘레벨3’는 평상시에는 자율주행을 하다가 비상시에만 운전자가 개입하는 수준의 기술이다. 다섯 단계로 나뉘는 자율주행기술의 중간수준이지만, 상용차 중에선 최고 레벨로 평가된다는 점에서 적잖은 의미를 지닌다.

레전드 자율주행차 상용화는 ICT(정보통신기술) 혁명 흐름에서 살짝 뒤처졌던 일본 기업들이 4차 산업혁명 선도에 얼마나 절치부심하는지를 잘 보여주는 사례다. 일본 정부는 안전상 우려가 말끔히 해소되지 않은 상황인데도 내년 봄부터 고속도로와 통행량이 적은 도로에서 ‘레벨3’ 이상 자율주행차 주행을 허용하는 법안을 지난해 통과시키며 기업들을 독려하고 있다. 자율주행차의 일반도로 운행을 막고, 지정된 테스트장소에서조차 운전자 탑승을 의무화한 우리 정부와 대비되는 행보다. 한국의 자율주행 스타트업들은 ‘안보이슈’ 탓에 상용화에 필요한 정밀지도 제작도 불가능해 실리콘밸리 등으로 내몰리는 상황이다.

규제 해소가 시급한 신산업이 자율주행차만은 아니다. 거의 모든 4차 산업혁명 분야에서 복합규제가 기술 개발과 사업화를 가로막고 있다. 대통령이 몇 차례나 다짐한 원격진료조차 규제장벽에 막힌 바이오 헬스를 보면 분명해진다. ‘황우석 사태’ 이후 촘촘해진 규제를 피해 줄기세포 연구는 미국으로, 치료는 일본으로 나가서 하는 바이오기업이 속출하고 있다.

핀테크, 공유경제, 드론 등 ‘미래 먹거리’로 각광받는 분야도 마찬가지다. 세 번째 인터넷은행이 우여곡절 끝에 16일 인가받았지만, 핀테크 역시 첩첩규제에 쌓여 있다. 영국은 신용평가 때 비금융정보를 활용할 수 있지만 한국은 신용정보법에 막혀 있다. 신용평가가 힘들어지니 사업리스크가 커질 수밖에 없다. ‘타다 사태’에서 보듯이 공유경제의 싹도 마르고 있다. 우버는 자전거에서 비행기까지 모든 운송 수단을 하나의 앱에서 이용하는 통합플랫폼을 구축 중이지만, 한국에선 이익단체와 공무원 보신주의에 밀려 ‘집단 고사’로 치닫고 있다. 미국과 기술전쟁을 벌이고 있는 중국도 규제 완화 속도를 높이고 있다. 드론의 경우 드론 전용주파수를 신설해 지원하고 있다.

우리 정부도 ‘규제 완화’를 부르짖고 있지만 말뿐인 점이 좌절감을 더 키운다. 4차 산업혁명의 핵심인 ‘데이터 3법’ 개정안은 좌파시민단체의 발목잡기와 국회의 눈치보기에 차일피일 입법이 미뤄지고 있다. “K팝의 나라가 왜 이렇게 혁신은 못 하느냐”며 고개를 갸웃거리는 외국인들에게 해줄 말이 궁색하다. 4차 산업혁명 분야에서 ‘승자독식’ 경쟁이 불 붙고 있는데, 한국은 규제에 발목 잡힌 채 ‘골든타임’을 흘려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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