덴마크의 자살률은 한국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2015년 기준 덴마크의 자살률은 10만 명당 9.4명이다. 같은 해 한국은 25.4명이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6개 가입국 중 덴마크는 26위, 한국은 1위다. 30여 년 전 상황은 반대였다. 1980년 덴마크의 자살률은 31.6명이었다. 통계청이 자살률 통계를 집계하기 시작한 1983년 한국의 자살률은 8.7명에 불과했다.
아네트 얼랜슨 덴마크 국립자살예방연구소 부소장은 “세계보건기구(WHO) 권고에 따라 1999년부터 시행한 자살 예방 이니셔티브가 자살률 감소에 크게 기여했다”고 말했다. 얼랜슨 부소장은 미국자살학협회의 알렉산더 그랄닉상과 덴마크 노르든토프트상을 받은 자살 예방 전문가다. 지난 4일 국회자살예방포럼 국제세미나 참석차 방한했다. 자살예방포럼 세미나는 해외의 자살 예방 정책 선진사례를 벤치마킹하기 위한 자리로 생명보험사회공헌위원회, 안전생활실천연합, 주한 미국대사관, 주한 덴마크대사관 주관으로 열렸다. 생명보험사회공헌위원회와 안전생활실천연합은 이 밖에도 전국의 모범 운전자를 대상으로 ‘생명존중 베스트 드라이버’ 양성 등 다양한 자살 예방 사업을 진행 중이다.
얼랜슨 부소장은 덴마크가 자살률을 획기적으로 낮출 수 있었던 이유로 덴마크 전역 20곳에 있는 국립자살클리닉을 꼽았다. 1992년 설립된 국립자살클리닉은 2006년 국영화 이후 덴마크 의료보험체계 안으로 편입됐다. 덴마크 국민 누구든 무료로 상담과 치료를 받을 수 있다. 매년 2500명이 넘는 사람이 이곳에서 집중 관리를 받는다. 얼랜슨 부소장은 “전국에 자살클리닉이 갖춰지면서 자살률이 큰 폭으로 떨어졌다”며 “민간 연구기관과 인적 협력도 활발하다”고 말했다.
자살 예방 방법으로 얼랜슨 부소장이 가장 강조한 것은 ‘수단 제한’이다. 그는 “자살을 시도할 수 있는 수단 자체를 없애거나 사용하기 힘들게 만드는 것이 큰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덴마크에서는 아스피린 같은 일반의약품도 병이 아니라 낱개 포장한다. 과다복용하면 문제가 있을 수 있기 때문에 약을 한꺼번에 먹기 위해서는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들게끔 하는 것이다.
얼랜슨 부소장은 자살 시도가 많은 장소에도 수단 제한 장치가 많이 설치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얼마 전 철거된 서울 마포대교의 자살 예방 문구에 대해서는 “자살 예방 문구를 다리에 새기고 난간을 높이는 것은 좋은 시도로 본다”며 “공무원이 아니라 자살 생존자들이 의사결정을 주도했다면 더 좋았을 것”이라고 했다.
얼랜슨 부소장은 “사회가 정신과에 가는 것을 낙인찍는 사회가 돼서는 안 된다”고 거듭 강조했다. 정신과 상담이야말로 가장 확실한 자살 예방 수단이어서다. 그는 “덴마크도 정신과 치료받는 것을 금기시하는 사회 분위기가 있었다”며 “국립자살클리닉이 일반적인 병원이라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자살률이 떨어질 수 있었다”고 말했다.
잇단 한국 유명인의 자살 소식에 유감을 표하며 자살 예방에 있어 언론이 큰 역할을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얼랜슨 부소장은 “언론이 ‘파파게노 효과’를 불러올 수 있다”고 말했다. 파파게노 효과는 모차르트 오페라 등장인물인 파파게노가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슬픔에 자살 대신 종을 울리는 것을 선택해 결국 사랑하는 사람을 다시 만나게 되는 데서 유래했다. 언론이 유명인의 자살 보도를 자제하고 자살 수단 등을 자세히 묘사하는 대신 신중한 보도를 하면 자살을 예방할 수 있다는 걸 뜻한다. 그는 “항상 베르테르 효과만 있는 것은 아니다”며 “언론이 오히려 자살 예방에 최전선에 설 수 있다”고 말했다.
얼랜슨 부소장은 정신적으로 힘들 땐 꼭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누군가가 자살을 시도하는 건 한 가지 이유에서만 비롯되는 게 아니다”며 “우울증을 견디기 위해 약물에 의존하기보다는 전문가와의 상담이 필수적”이라고 말했다.
송영찬 기자 0full@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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