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 백화점 황범석·슈퍼 남창희…유통 계열사 대표 절반 '물갈이'

입력 2019-12-17 17:24   수정 2019-12-18 02:38

롯데는 지난 10월 말 ‘비상경영체제’에 들어갔다. 주력 계열사 실적 부진이 표면적 이유였다. 하지만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의 속내는 따로 있었다. 조직에 긴장감을 불어 넣게 하기 위한 ‘처방’이었다. 그만큼 신 회장이 그룹 운영에 답답함을 느끼고 있었다는 얘기가 흘러나왔다. 신 회장은 결국 ‘인사 카드’를 꺼내들었다. 사상 최대 ‘물갈이 인사’를 통해 대대적 쇄신과 변화를 선택했다.


성과 있는 곳에 보상 있다

이번 인사에서 가장 큰 특징은 철저히 성과를 따졌다는 것이다. 실적이 좋지 않은 계열사 대표 상당수를 교체했다. 유통 계열사 변화가 가장 크다. 14곳 중 절반에 해당하는 7곳의 대표를 교체했다. 신임 대표는 대부분 이전 업무에서 성과를 낸 인물들이다.

롯데백화점 신임 대표로 내정된 황범석 롯데홈쇼핑 영업본부장(전무)이 대표적이다. 백화점 대표에 전무급 인사가 선임된 것은 ‘파격’이라는 평이 나온다. 이전에는 대부분 사장급이 맡던 자리다. 황 신임 대표는 홈쇼핑에서 자체상표(PB) ‘LBL’ 등 의류 브랜드를 성공적으로 안착시켰다는 평가를 받는다. 홈쇼핑은 최근 백화점에 버금가는 ‘쇼핑 채널’이 됐다.

실적이 악화된 롯데슈퍼에는 남창희 롯데마트 고객본부장(전무)이 구원투수로 나선다. 그는 롯데마트에서 상품기획(MD) 본부장 등 주요 요직을 거치며 롯데마트의 PB 개발을 주도했다. 2017년 롯데마트가 내놓은 PB ‘온리 프라이스’는 가성비 트렌드와 맞물려 연 1000억원대 브랜드로 성장했다. 그는 마트와 슈퍼의 통합구매 작업도 담당했다. 이를 통해 ‘바잉파워’를 키웠다.

롯데쇼핑 e커머스(전자상거래) 대표로 선임된 조영제 전무는 롯데지주에서 유통 전략을 담당했다. 최근 온라인 사업 강화에 나선 롯데는 지주 출신의 ‘힘 있는’ 대표를 앞세워 대대적인 투자에 나설 전망이다. 롯데쇼핑은 e커머스 분야에서 인수합병(M&A) 등 다양한 방안을 검토 중이다.

이 밖에 롭스는 홍성호 롯데백화점 영남지역장(전무)을, 롯데멤버스는 전형식 롯데백화점 디지털전략본부장(상무)을 내정했다. 롯데컬처웍스에는 기원규 롯데지주 인재육성팀장(전무), 세븐일레븐에는 최경호 상무 등이 선임됐다.

호텔과 식품 부문 일부 계열사도 대표가 바뀐다. 롯데호텔은 해외사업 강화를 위해 이 회사의 김현식 해외운영본부장(전무)을 대표로 내정했다.

1년 만에 수장을 교체한 곳도 있었다. 김태환 롯데주류 대표, 선우영 롭스 대표 등이다. 롯데주류는 올해 ‘일본 제품 불매운동’ 등의 여파로 타격이 컸다. 롯데가 국내로 수입해 판매하는 일본 아사히맥주, 롯데주류의 소주 브랜드 ‘처음처럼’ 등의 판매가 급감했다. 롯데음료의 이영구 대표가 롯데주류까지 총괄하기로 했다.

BU체제도 바꿔

롯데는 인사와 함께 조직도 개편했다. BU장의 역할을 확대한 것이 핵심이다.

강희태 신임 유통 BU장은 롯데쇼핑의 대표로 백화점, 마트, 슈퍼, 롭스, e커머스 등을 모두 총괄하게 된다. 지금까지는 각 계열사 대표에게 경영을 위임하고, BU장은 명목상 대표로만 있었다. 이를 BU장이 실질적으로 계열사들을 총괄하는 구조로 바꾸기로 한 것. 강 BU장은 각 유통 계열사의 주요 임원에 대한 인사와 예산권까지 갖게 됐다. 백화점 대표의 ‘급’을 전무로 낮춘 것도 이 같은 조직개편이 한 이유가 됐다.

롯데케미칼도 BU장에게 힘을 실어줄 예정이다. 김교현 화학BU장이 롯데케미칼 롯데첨단소재 등 화학 계열사 경영에 깊이 관여할 예정이다.

이는 그동안 BU 체제의 문제로 제기된 ‘옥상옥’ 구조를 풀기 위한 것이기도 하다. BU장이 권한과 책임까지 같이 지게 하겠다는 것이다.

산적한 현안 해결 나서

신임 BU장과 대표들은 산적한 현안을 해결하기 위한 ‘해결사’ 역할도 해야 한다.

2016년부터 추진된 호텔롯데 상장 작업은 더 힘을 받게 됐다. 호텔&서비스 BU장으로 내정된 이봉철 롯데지주 재무혁신실장(사장)은 그룹 내 대표적 ‘재무통’으로 분류된다. 그는 옛 그룹 정책본부 재무팀장과 롯데손해보험 대표 등을 역임했다. 그는 일본 롯데홀딩스가 지분 99%를 보유한 호텔롯데 상장 작업을 지휘하게 됐다.

김현식 롯데호텔 신임 대표도 이 작업을 뒷받침한다. 호텔롯데가 성공적으로 상장하려면 호텔 사업의 성장이 뒷받침돼야 한다. 롯데호텔 해외 사업을 총괄해온 김 신임 대표는 향후 해외에 호텔을 늘리는 데 주력할 것으로 보인다.

롯데 관계자는 “빠르게 변화하는 경영환경에 민첩하게 대응하기 위해 젊은 감각을 지닌 경영자를 대거 발탁한 것이 이번 인사의 핵심”이라고 말했다.

안재광/류시훈 기자 ahnj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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