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이 체질이라 육류나 생선은 소화시키지 못했다. 밥과 김치를 주로 먹다 보니 김장 맛이 좋은 해엔 살이 올랐다. 어머니와 할머니는 그를 위해 전국을 돌며 맛있는 김치를 배워왔고, 김장 날은 축제였다. 1986년 한성식품을 설립하고 김치 제조에 본격 뛰어들었다. 초기엔 혼자 하루에 김치 15㎏을 담그는 가내 수공업 수준이었다. 1988년 서울올림픽 등 큰 행사에 김치를 공급하며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이젠 전국 4개 공장에서 130t의 생산능력을 갖추고 매출 550억원을 내는 국내 최대 김치회사로 성장했다. 김순자 한성식품 대표는 ‘손맛’을 고집하며 여전히 직접 김치를 담근다.
국산재료로 만들어 맛 좋아
한성식품의 김치는 ‘맛이 변함없다’는 평가를 받는다. 국산 재료만을 사용하며 배즙 무즙 양파즙 등 ‘3즙’을 넣는다. 황태육수를 사용해 차별화된 깔끔한 맛을 낸다. 다른 업체의 김치보다 비싼 이유다. 김 대표는 “천일염으로 하루 동안 배추를 절이고 저온 숙성하는 등 전통 방식의 제조법을 고수한다”며 “대부분 시판 김치는 시간이 지나면서 물러지는데 우리 김치는 익으면서 깊은 감칠맛이 난다”고 설명했다.
한성식품은 대형병원, 관공서, 학교 등에 공급하며 국내 B2B(기업 간 거래) 김치 시장에서 부동의 1위다. 얼마 전부터는 고급 김치로 소비자들을 직접 공략하고 있다. 롯데호텔과 함께 내놓은 ‘요리하다 롯데호텔 김치’ 4종은 출시 첫 달에만 매출 1억원을 올리는 등 돌풍을 일으켰다. 그는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한성식품이 만든 김치를 한 번쯤은 먹어 봤을 것”이라고 했다.
포기김치 갓김치 백김치 등 전통 김치를 비롯해 미니롤보쌈김치 무샌드위치김치 미역김치 등 기발하고 다양한 김치를 생산한다. 김치 관련 특허만 28종에 달한다. 2004년 설립한 김치연구소는 고부가가치 상품개발을 통해 김치 고급화 및 차별화 전략에 주력하고 있다. 30여 년간 한우물만 파다 보니 정부도 그를 인정했다. 김치 신제품 개발 및 산업 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2007년 대한민국 김치명인 1호로, 2012년엔 대한민국 식품명장으로 선정됐다.
‘김치 종주국’ 자존심을 걸다
김 대표는 ‘찾아가는 김치체험 교실’ 등 다양한 행사를 열어 우리 김치 알리기에 나서고 있다. 싸고 질 낮은 중국산 김치에 익숙해진 사람들의 입맛을 바꾸고 어린 세대들이 김치에 익숙해지게 하기 위해서다. 그는 “김치 체험은 아이들의 정서 및 창의력 발달에도 도움을 준다”며 “‘김치 종주국’이라는 타이틀을 뺏길까봐 조바심이 난다”고 말했다. 2012년엔 강원 정선군에 관광 테마파크 ‘김순자 명인 김치테마파크’를 열었다.
식생활의 간편화 및 외식 증가 추세로 포장김치 시장은 계속 증가할 것이라는 게 김 대표의 판단이다. 지난해 말 정선에 생산공장을 완공한 것도 그래서다. 부천과 서산, 진천에 이은 네 번째 공장이다. 김 대표는 “거래처인 삼성웰스토리의 도움을 받아 스마트 공장을 구축해 포장 및 물류 자동화 등 생산성을 높였다”며 “품질 좋은 고랭지 배추를 제때 공급받고 지역 일자리 창출에도 기여한다”고 설명했다.
세계 28개국에 수출하는 등 해외에서도 반응이 좋다. 중동지역 공략을 위해 할랄 인증도 받았다. 김 대표는 “요즘 추세에 맞춰 나트륨을 줄인 김치가 세계인들에게 ‘K푸드’로 인기”라며 “해외 미군부대에도 김치를 공급한다”고 강조했다.
고운 외모와 달리 손은 온갖 주름과 상처로 거칠었다. “고무장갑을 끼면 김치가 숨쉬는 걸 손끝으로 느낄 수 없어요. 김치는 손맛입니다.”
부천=김정은 기자 likesmile@hankyung.com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