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복지부는 최근 혈액관리 기본계획 제정 태스크포스(TF)를 꾸렸다. 정부가 사상 처음으로 혈액관리법에 따른 피 확보 계획 수립에 나선 건 ‘수혈용 혈액 대란’이 예고돼 있기 때문이다. 전체 헌혈의 68.4%를 차지하는 10~20대는 올해 1190만 명에서 2030년 880만 명으로 26% 줄어드는 반면 헌혈된 피의 70%가량을 소비하는 50세 이상 인구는 1988만 명에서 2551만 명으로 28.3% 늘어날 전망이다.
수혈용 혈액은 사실상 수입 불가 품목인 만큼 “30~40대의 헌혈을 늘리고 병원의 피 사용량을 빡빡하게 관리하겠다”는 복지부 대책은 임기응변에 불과하다. 인구 구조상 혈액 수요공급 격차가 20% 가까이 벌어지는 2026년부터 피 부족에 따른 ‘수술 대란’이 올 것이란 관측이 나오는 배경이다.
2000년대 들어 시작된 저출산·고령화가 대한민국 정치 사회 경제 문화의 판도를 뒤흔들기 시작했다. 18일 통계청에 따르면 올해 7월부터 내년 6월까지 30만9000명이 태어나고 31만4000명이 사망해 1983년 관련 통계 작성 이후 처음으로 ‘인구 자연감소’가 시작된다. 인구 구성비는 올해 유소년(0~14세) 12.4% : 생산연령인구(15~64세) 72.7% : 고령인구(65세 이상) 14.9%에서 △2025년 10.7% : 69.1% : 20.3% △2030년 9.6% : 65.4% : 25.0% △2040년 9.8% : 56.3% : 33.9%로 바뀐다.
청장년층이 홀쭉해지고 노년층만 두터워지면서 2022년을 기점으로 백화점 대형마트 슈퍼마켓 등 전통 유통업 매출이 줄어들기 시작한다. 학령인구 감소로 2024년엔 산술적으로 전국 대학의 25%는 신입생을 한 명도 못 뽑게 된다. 현행 시스템이 유지되면 2030년에는 ‘남아도는 초등학교 교사’가 5만 명이 넘을 전망이다.
총인구는 2028년 5194만 명을 정점으로 감소하기 시작해 2067년에는 3000만 명대(3929만 명) 시대에 들어간다. 지금은 생산연령인구 100명이 노인과 유소년 37.6명을 부양하지만 2028년에는 50명, 2055년에는 100명을 먹여 살려야 한다. 복지지출이 늘면서 나랏빚은 올해 734조원에서 2028년 1490조원으로 두 배가량이 된다.
조영태 서울대 인구정책연구센터장은 “저출산·고령화 영향이 본격화하는 내년부터 대한민국은 모든 면에서 바뀌기 시작할 것”이라고 말했다.<hr style="display:block !important; margin:25px 0; border:1px solid #c3c3c3" />10년 뒤 남아도는 초등교사 5만명…10명이 5명 먹여살려야
‘2024년, 전국 대학 모집정원이 입시생 수보다 25% 많아진다. 2028년, 일하는 사람 100명이 노는 사람 50명을 먹여 살려야 한다. 2035년, 여성 3명 중 1명은 65세 이상 할머니가 된다. 2045년, 사망자(63만 명)가 출생자(27만 명)의 두 배를 넘어선다. 2067년, 총인구 3000만 명대 시대에 들어간다….’
통계청이 올 3월 내놓은 ‘장래인구추계’를 토대로 만든 대한민국의 미래 모습이다. 요약하면 ①태어나는 사람은 적은데 ②매년 100만 명가량 태어난 베이비부머(1955~1964년생)들의 합류로 고령자가 대폭 늘면서 ③10년 뒤부터 총인구가 줄기 시작해 ④정치 사회 경제 문화 등 대한민국의 모든 게 바뀐다는 것이다. “인류 최대의 혁명은 산업혁명이나 정보기술(IT) 혁명이 아니라 인구가 줄어드는 인구혁명”(미래학 대가인 피터 드러커)이란 얘기가 나오는 이유다.
2030년, 초등교사 5만 명이 남아돈다
장래인구추계와 관련해 눈여겨봐야 할 대목은 크게 두 가지다. 우선 인구구조의 변화다.
젊은이는 줄어들고 노인은 늘어난다. 그것도 ‘급격하게’다. 인구 구성비를 보면 한눈에 들어온다. 올해는 △0~14세 유소년인구 643만 명(12.4%) △15~64세 생산연령인구 3759만 명(72.7%) △65세 이상 고령인구 768만 명(14.9%)이다. 이 중 유소년과 고령인구 수는 △2025년 554만 명 : 1051만 명 △2030년 500만 명 : 1298만 명 △2040년 498만 명 : 1722만 명 △2050년 425만 명 : 1900만 명 △2067년 318만 명 : 1827만 명으로 바뀐다. 지금은 고령인구가 유소년인구보다 20% 정도 많지만 5년여 뒤에는 2배, 20년 뒤에는 3.5배, 30년 뒤에는 4.5배로 벌어진다는 얘기다.
두 번째 주목할 분야는 인구 감소다. 통계청은 2019년 7월부터 2020년 6월에 자연감소가 시작될 것으로 내다봤다. 외국인의 국내 유입을 감안한 인구 순감소 시점은 2030년으로 추정했다. 2028년 5194만 명을 정점으로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해 2067년(3929만 명)까지 1265만 명 줄어든다.
인구구조 변화와 인구 감소란 ‘메가 트렌드’는 대한민국 미래를 송두리째 바꿔놓을 ‘게임 체인저’다. 학교만 봐도 그렇다. 지난해 전국 대학의 입학정원은 49만7218명이었다. 인구추이를 감안한 5년 뒤 입시생 수는 통틀어 37만3470명에 불과하다. 대입 정원이 그대로 유지된다면 2024년에는 대학에 남아도는 학생 자리가 12만3848명에 달한다. 산술적으로 대학 네 곳 중 한 곳은 5년 내 문을 닫아야 하는 셈이다.
초등학교도 마찬가지다. 올해 교원(18만8582명·기간제 포함) 1인당 학생 수(274만7219명)는 14.6명이다. 2030년에는 초등학생 수가 180만 명으로 줄어든다. 현행 교원 1인당 학생 수 비율이 유지된다면 2030년 필요한 교원은 12만3288명이면 된다. 2030년까지 신규 채용 계획 및 퇴직 교원 추계를 고려할 때 줄어드는 인력이 1만1039명(기간제는 현행 유지)인 만큼 ‘남아도는 교사’가 5만4255명에 이른다는 계산이 나온다.
‘일손’ 부족…소비 위축 불 보듯
산업계는 인구감소와 인구구조 변화의 소용돌이에 휘말릴 전망이다. 생산과 소비, 두 측면에서 엄청난 변화가 예상되기 때문이다. 그 시작은 ‘일손 부족’이 될 가능성이 높다. 생산연령인구는 올해 3759만 명에서 2025년 3585만 명, 2029년 3433만 명으로 꾸준히 줄어든다. 향후 10년 내에 ‘일할 사람’이 8.6% 감소한다는 얘기다.
다시 10여 년이 흘러 2040년이 되면 노동시장에서 569만 명이 추가로 빠진다. 생산연령인구는 2000만 명대(2864만 명)로 쪼그라든다. 인공지능(AI)과 로봇이 인력을 대체하는 속도가 생산연령인구 자연감소 속도보다 늦으면 ‘노동력 부족’으로 문을 닫는 기업이 나올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인구가 소비시장에 던질 충격파는 생산 쪽보다 넓고 깊다. ‘씀씀이’가 큰 청장년 비중이 줄고 번듯한 수입이 없는 은퇴자 비중이 늘어나는 데다 인구감소도 예고된 만큼 소비가 늘어날 가능성은 높지 않다. 서울대 인구정책연구센터는 지난해 25만7000건이었던 혼인 건수가 2025년에는 20만 건 안팎으로 22% 감소할 것으로 추정했다. 가정을 이룰 때 주로 사는 가전, 가구, 자동차 등 고가 내구재를 제조·판매하는 기업에는 대형 악재다.
반면 실버산업은 내년부터 만개할 것으로 전망된다. 조영태 서울대 인구정책연구센터장은 “내년에 80세 이상 인구가 200만 명에 육박하게 된다”며 “실버산업이 클 수 있는 ‘규모의 경제’가 처음으로 갖춰지는 셈”이라고 말했다.
빈집 느는 지방…백화점도 문 닫아
인구구조 변화와 인구 감소는 지역적으로 수도권보다 지방에 더 큰 영향을 줄 가능성이 높다. 소멸위험지수를 두드려보면 답이 나온다. 이 지수는 20~39세 가임여성 인구수를 65세 이상 노인 인구 수로 나눈 수치다. 0.5에 못 미치면 향후 인구 감소로 인해 소멸위험이 높은 지역으로 분류된다. 현재 이런 지역으로 분류되는 곳은 전남 한 곳뿐이다. 여기에 시·도별 장래인구추계를 대입하면 강원 전북 경북 경남 충북 제주 등 12개 광역시·도가 차례차례 들어온다.
인구감소는 빈집 증가와 상권 붕괴로 이어진다. 롯데미래전략연구소는 2023년까지 현재 운영하고 있는 백화점 100개 중 17개가 사라질 것으로 전망했다. 대부분 지방에 있는 점포다. 한국국토정보공사는 2050년께 전체 국내 집의 10%가 비어 있게 될 것으로 내다봤다.
‘늙어가는 사회’는 일하는 사람과 국가에 큰 짐을 떠안길 수밖에 없다. 올해는 생산연령인구 100명이 노인과 유소년 37.6명을 부양하고 있지만 △2025년 44.8명 △2030년 53.0명 △2040년 77.5명 △2050년 95.0명으로 급격하게 늘어난다. 2065년 부양비는 117.8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최고 수준이 된다. 일본에서 불거진 젊은 층의 국민연금, 건강보험 등 사회보험료 납부 거부 운동이 국내에서 나타날 수도 있다. 복지지출 증가로 나랏빚도 올해 731조원에서 2050년 2863조원(국회 예산정책처 추정)으로 늘어날 전망이다.
오상헌/노경목/서민준/박종관 기자 ohyea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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