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최대주주가 여덟 번이나 바뀌는 풍파를 겪은 한글과컴퓨터그룹(한컴그룹)이 안정을 찾은 때다. 한컴의 아홉 번째 주인이 된 김상철 한컴그룹 회장은 장기인 인수합병(M&A)으로 활로를 열었다. 김 회장은 혁신적인 제품으로 사업을 다각화하고, 적극적인 M&A를 추진해 기업을 키웠다. 지금은 국내 시장을 넘어 글로벌 시장에서도 경쟁을 준비하는 등 공격적인 경영 전략을 펼치고 있다.
한컴은 2014년 국내 대표적인 임베디드 소프트웨어 기업 MDS테크놀로지(현 한컴MDS)를 인수한 데 이어 2015년에는 국내 모바일 포렌식 1위 기업 지엠디시스템(현 한컴지엠디)과 벨기에의 PDF 솔루션 기업 아이텍스트도 인수했다. 2017년에도 국내 대표적인 개인안전장비기업 산청(현 한컴라이프케어)을 사들이는 등 신사업 분야로 사업 영역을 넓혔다. 소프트웨어가 중심이었던 한컴은 인공지능(AI), 자율주행차, 로봇, 스마트시티, 클라우드 등을 아우르는 종합 정보기술(IT) 회사로 변신하며 가파른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최근에는 글로벌 IT업체들과도 손잡고 있다. 중국 AI업계의 ‘빅4’로 꼽히는 아이플라이텍과 협력을 맺고 자동통번역, 로봇 등에 쓰일 AI를 개발하고 있다. 세계 최대 그래픽처리장치(GPU) 업체인 엔비디아와는 자율주행용 칩셋 공급 계약을 맺었다. 클라우드 시장 1위인 아마존웹서비스(AWS)엔 웹오피스 솔루션을 공급한다.
오피스 소프트웨어 수출 등 해외 진출도 순항하고 있다. 한컴은 유럽 최대 전자제품 판매점인 미디어마트를 통해 독일과 오스트리아에 한컴오피스 판매를 시작했다. 앞서 중국의 싱킹그룹과 한컴오피스 판매 계약을 체결하고 홍콩, 대만에도 공급하기로 했다. 김 회장은 18일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한컴그룹이 보유한 원천 기술인 소프트웨어 기술력과 새롭게 얻은 하드웨어 기술력을 바탕으로 글로벌 시장을 선도하는 기업이 되겠다”고 강조했다.
▷최근 한글과컴퓨터 수출 실적이 눈에 띕니다.
“이제 해외 시장은 피할 수 없는 선택지가 됐습니다. 글로벌 투자 규모도 대폭 늘려 그룹 차원에서 진행하고 있습니다. 최근에도 AWS의 연례행사 ‘AWS 리인벤트’에 참가하기도 했습니다. 한컴은 PC-모바일-웹 기반의 풀 오피스(full office) 라인업을 선보일 수 있어 본격적으로 글로벌 오피스 시장을 공략하기에 적기입니다. 해외 시장에서 긍정적인 반응이 나오고 있습니다. 중국·대만·홍콩 등 중화권 시장 진출은 물론 러시아·독일·오스트리아 등 유럽 지역에도 판로를 개척한 상태입니다. 아이플라이텍뿐만 아니라 중국의 대형 IT기업과도 기술 협력을 계속 논의하고 있습니다. 해외나 국내나 사업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 신뢰를 주고받으며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이끄는 것입니다.”
▷한컴을 인수한 지 10년이 됐습니다. 그동안 달라진 것은 무엇인가요.
“우선 각 분야 선도 기업들을 M&A하면서 한컴의 글로벌 경쟁력을 갖췄습니다. 두 번째는 AI와 블록체인, 클라우드의 접목입니다. 10년 전의 한컴오피스와 지금의 한컴오피스는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세 번째는 리눅스 기반의 개방형 운영체제(OS)인 ‘구름’을 만들면서 확장성을 넓힌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말랑말랑’ 브랜드로 친근한 이미지를 쌓으며 브랜드 인지도를 높였습니다. 올해 대한민국 100대 브랜드에 처음 선정되고 ‘한국의경영대상’ 명예의 전당을 헌액하기도 했습니다.”
▷최근 ‘한컴구름협의체’도 공식 발족했습니다.
“오픈소스 기반의 개방형 OS인 ‘구름 플랫폼’ 생태계 구축과 활성화를 위한 협의체입니다. 구름 플랫폼은 4년 전부터 구상부터 개발까지 이어진 겁니다. 수익 사업이라기보단 정부를 돕기 위해서 나섰습니다. 한컴을 중심으로 보안기업과 개방형 OS, 클라우드 분야 기업, 대학 등이 참여했습니다. 윈도 OS의 보안 취약성과 종속성을 벗어나기 위한 정부의 노력이기도 합니다. 내년 정도면 공공기관 등에 적용이 가능해질 것으로 봅니다.”
▷회사 경영 체계는 지난 10월 변성준 단독 대표이사 중심으로 변경됐습니다.
“한컴그룹은 경영방식이 독특합니다. 우선 회장은 각 계열사 경영에 관여하지 않습니다. 전 그룹 간 시너지를 높이거나 신성장동력을 확보하기 위해 해외 사업, 기술제휴와 합작 정도에만 참여합니다. 가령 기술개발(R&D) 같은 경우엔 각 계열사가 협력하며 진행하는데 이 사이에서 조율하는 것이 제 몫이죠. 또 격주로 200명가량이 참석하는 대규모 회의를 주재하고 있습니다. 계열사 대표부터 일선 개발자까지 참석해 얼굴을 맞대고 자유롭게 의견을 나누는 자리입니다.”
▷다양한 기업 인수가 한컴 성장의 비결이라는 분석도 있습니다.
“인수한 기업들과 한컴의 IT 역량이 합쳐져 4차 산업혁명의 길을 열고 있습니다. 한컴라이프케어는 인수하기 전에는 일반 제조기업에 불과했습니다. 하지만 한컴그룹과 함께하면서 기술과 사회안전망을 접목한 첨단기술회사로 거듭났어요. 예전에는 현장 소음으로 바로 옆에 있는 사람의 목소리도 듣기 힘들었습니다. 한컴라이프케어의 소방관용 공기호흡기는 통신모듈을 안면 마스크에 내장해 마스크를 벗지 않고도 통신이 가능합니다. 공기 잔량과 주변 온도 등 다양한 정보도 현장의 소방관에게 직접 알려줍니다. 지난해 소방산업기술부문에서 대통령상을 수상하기도 했습니다.”
▷최근 AI를 활용한 제품도 계속 나오고 있습니다.
“한컴만의 원천기술로 전 세계 AI 시장을 공략할 것입니다. 한컴그룹은 번역, 음성인식과 관련한 AI 엔진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원천기술로 중국 4대 AI 기업인 아이플라이텍과 합작법인 아큐플라이AI를 설립하고, AI 기반 통번역 단말기 ‘지니톡 고’를 시장에 출시했습니다. 이외에도 콜봇 기반의 AI 컨택센터와 문서인식(OCR) 솔루션 등을 개발했습니다. 한컴오피스 2020에도 AI 기술이 들어갔습니다.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의 엑소브레인을 접목해 지식검색 기능을 넣었고, 이미지를 문서로 변환하는 OCR 기능도 적용했는데 이런 기능들이 다 AI 기술입니다.”
▷한컴의 스마트시티 사업도 궁금합니다.
“한컴그룹은 서울시와 세계스마트시티기구, 한국스마트카드 등 관련 기관들과 수출형 스마트시티사업 컨소시엄인 서울아피아컨소시엄을 구축했습니다. 서울시처럼 스마트시티에 관심이 지대한 지방자치단체가 많아 협의하고 있습니다. 서울에서의 스마트시티 모델을 기반으로 전국 지자체에 해당 모델을 보급하고, 수출로 이어갈 것입니다. 또 도시를 스마트하게 바꾸는 과정에서 핵심은 모빌리티(교통)라고 봅니다. 그중에서도 센서를 활용한 주차공유 사업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으며, 이 사업을 중심으로 향후 전기차 충전, 차량공유 등으로 다양하게 확대해 나갈 계획입니다. 국내뿐만이 아니라 해외 도시들과도 긴밀히 논의하는 중입니다.”
▷다음달 미국에서 열리는 세계 최대 전자쇼인 CES 2020에 이번에도 참가합니다.
“이번에도 저를 비롯한 다수의 실무진이 CES 현장으로 갑니다. 지난해의 두 배 규모인 80여 명이 참석합니다. 한컴그룹의 로봇, 블록체인, 스마트시티 솔루션 등을 내놓으려고 합니다. 아이나 노부모를 돌볼 수 있는 AI 가정용 로봇인 ‘토키’를 비롯해 생애 전 과정에 적용이 가능한 라이프 블록체인 플랫폼을 선보일 계획입니다.”
▷내년이면 한컴 설립 30주년입니다.
“올해 한컴그룹은 한컴위드와 한컴지엠디를 합병하며 지배구조 개선을 위한 작업을 마쳤습니다. 사실상 한컴위드가 지주사 역할을 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함으로써 그룹 성장에 중요한 변곡점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내년에도 유망한 기업을 인수해서 한컴그룹의 규모를 키우고 그룹의 미래 먹거리를 계속 찾아 나가겠습니다.
” 김남영 기자 nyki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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