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자동차 브랜드들이 연말을 앞두고 다시 대대적인 할인에 들어갔다. 차량 가격을 직접 할인하는 것은 물론 주유비 명목으로 1000만원 넘는 돈을 제공하기도 한다. 올 7월 시작된 일본 제품 불매 여파를 뚫기 위해 파격 할인 전략을 펼쳤던 일본 수입차 업계가 연말까지 할인 공세를 이어가는 셈이다.
19일 각 사에 따르면 일본차 업계가 모두 차량 할인에 나섰다. 혼다코리아는 중형 세단 어코드 1.5 터보를 판매가 3690만원에서 20% 할인된 3090만원에 판매한다. 150만원 상당의 무상 서비스 쿠폰도 얹어준다. 재고 물량 800대가 할인 대상이다.
할인에 인색했던 도요타도 다양한 차종 가격을 내렸다. 준중형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라브4 가솔린 모델은 500만원, 대형 SUV 시에나는 400만원 할인한다. 준대형 세단 아발론 하이브리드는 300만원, 중형 세단 캠리는 하이브리드와 가솔린 모두 200만원씩 몸값을 낮췄다. 렉서스도 일부 모델에 4% 할인이 적용된다.
닛산은 준대형 SUV 패스파인더를 자사 파이낸셜로 구입하면 1700만원치 주유권을 준다. 이는 5340만원인 차값의 32%에 해당한다. 엑스트레일도 차값의 30%에 달하는 최대 1230만원치 주유권을 주며, 전기차 리프를 구매하면 충전비 250만원과 충전기 설치비 80만원을 지원한다.
일본차 업계의 대대적 할인은 불매운동에 맞서 재고물량을 소진하기 위한 조치로 풀이할 수 있다. 지난 7월 불매운동이 시작됐을 당시 일본차 브랜드들은 대외 행보를 줄이며 한일 양국간 문제가 원만히 해결되기를 기다린다는 입장이었다.
예상과 달리 한일관계 악화가 지속되고 불매운동도 장기화되자 수입이 끊긴 딜러사들이 휘청대고 국내 유통망도 무너지기 시작했다. 더 이상 기다리긴 어렵다는 판단을 내린 한국지사들이 수익을 포기하고 재고 물량 처분에 나선 셈이다.
할인은 불매운동을 극복할 수 있는 수단이라는 점 또한 증명됐다. 혼다는 지난 10월 판매가 5490만원인 대형 SUV 파일럿을 1500만원 할인한 3990만원에 팔았다. 500대 한정 판매였지만 실제로는 665대가 팔리며 '완판'을 기록했다. 이를 지켜본 닛산과 도요타도 최대 1000만원에 달하는 할인 행보에 나서기 시작했다. 할인 효과에 힘입어 일본차 5개 브랜드 판매량은 8월 1398대, 9월 1103대에서 10월 1977대, 11월 2357대로 회복세를 탔다.
업계는 '번호판 꼼수'도 판매량 증가에 영향을 줬을 것으로 보고 있다. 기존 두 자릿수 번호판이 소진되며 지난 9월부터 세 자릿수 번호판이 도입됐다. 공교롭게 시기가 맞물린 탓에 불매운동이 시작된 이후 일본차를 산 소비자들은 세 자릿수 번호판을 달아야 했고, 이에 부담을 느껴 구매를 포기하는 사례도 적지 않았다. 이에 일본차 업계는 실제 차량과 다른 규격으로 등록 신고를 해 9월 이후 구입한 차량임에도 두 자릿수 번호판을 부착하는 꼼수를 부렸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자동차 제작증에 두 자릿수 번호판 규격을 기록해 구형 번호를 발급받은 뒤 번호판 크기만 새로 도입된 크기로 받는 사례가 발생했다. 번호판 크기는 신형이지만 적힌 차량 번호는 과거 두 자릿수 인 셈이다. 국토부는 이러한 방식으로 150여대 차량이 번호판을 허위 발급받은 것으로 집계하고 차주들에 과태료를 부과하는 한편, 일본차 업체와 한국수입자동차협회(KAIDA)에 관리·감독을 요청했다.
일본차 업계가 대대적인 할인 공세에 나섰지만, 오래가진 못할 것이라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재고 차량이 소진된 이후 남는 신차에는 대규모 할인을 적용할 수 없는 탓이다. 실제 닛산의 경우 패스파인더에 1700만원 혜택을 제공하지만, 새로 출시한 맥시마와 알티마에는 300만원대 혜택만 적용했다.
해가 넘어가면 차량 연식이 변경되는 것은 물론, 자동차 개별소비세가 정상으로 환원된다는 점도 부담으로 작용한다. 정부는 5%인 자동차 개소세를 작년 7월부터 1.5%포인트(p) 인하한 3.5%로 적용해왔다. 1년 반 동안 낮아진 개소세가 유지됐는데, 이달 말로 인하가 일몰된다. 개소세 5% 환원은 1월에 차를 인도받는 소비자부터 적용되는데, 3000만원 차량 기준 65만원 가량 가격이 오르는 효과가 발생한다. 개소세가 인하됐던 기간이 길었던 만큼, 소비자들이 느낄 부담도 클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개소세가 높아진 후에는 전체 자동차 판매량이 급감해왔다. 인하됐던 개소세가 정상화됐던 지난 2016년 7월 국산차 판매량은 전월 대비 24.8% 감소했고 가격이 더 비싼 수입차는 32.9% 쪼그라들었다"며 "일본차 업계는 어떤 수를 쓰더라도 이달 안에 재고를 모두 털어내야 한다는 부담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오세성 한경닷컴 기자 ses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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