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철준 대표 "고혈압 치료 의료기기 개발…藥 안 듣는 환자, 40분 시술로 혈압 낮춰"

입력 2019-12-30 17:37   수정 2020-01-02 15:11


“혁신적인 치료용 의료기기 개발의 선구자가 되겠다.”

의료기기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인 한독칼로스메디칼의 김철준 대표(67)가 밝힌 포부다. 중견 제약회사 한독의 자회사인 한독칼로스메디칼은 기존 약으로는 혈압 조절에 어려움을 겪는 고혈압 환자를 치료하는 의료기기 디넥스(Denex)를 개발하고 있다. 의학 전자공학 기계공학 등이 총망라된 디넥스는 변방에 머물고 있는 한국 의료기기산업의 위상을 끌어올리는 견인차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높다. 김 대표는 “가격과 품질에서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해 세계 시장을 선도하는 혁신 제품으로 키우겠다”고 말했다.

제약사의 의료기기 도전

한독칼로스메디칼 설립은 한독의 합작 청산에서 시작됐다. 1954년 세워진 한독은 1964년 독일 훽스트와 합작관계를 맺으면서 다국적 제약사의 한국 지사 역할을 했다. 이후 훽스트가 아벤티스에 합병되고 아벤티스가 사노피에 다시 합병되면서 한독의 파트너가 바뀌었다. 그러다 2012년 합작 관계를 전격 청산했다. 독자 경영으로 회사를 더 키워보겠다는 김영진 한독 회장의 결심에서였다.

한독은 2007년부터 독립 준비를 시작했다. 충북 음성에 있던 중앙연구소를 서울로 옮겼다. 변변찮던 연구소 기능을 강화해 연구개발(R&D) 실력을 키우기 위해서였다. 중앙연구소를 세운 지 꼭 20년이 되던 해였다. 큰 방향은 오픈 이노베이션(open innovation·개방형 혁신)이었다. 지금은 다국적 제약사는 물론 국내 바이오벤처들에도 익숙한 성장 전략으로 자리잡았지만 당시에는 개념조차 제대로 서 있지 않았다. 한독은 미국 생활용품업체 프록터앤드갬블(P&G)의 독자적인 혁신 방법론(connect and develop)을 벤치마킹했다. P&G의 혁신 방법론은 사내의 개발팀과 외부 개발자 등이 제휴해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것이었다. 한독은 당시 ‘신약 연구의 오픈 이노베이션’을 주제로 대대적인 콘퍼런스를 개최하며 새로운 도전을 알렸다.

하지만 한독이 정작 독립을 선언하자 시장의 반응은 싸늘했다. 사노피 아벤티스 의약품을 국내에 유통하던 안정적인 매출 기반을 포기한 것이기 때문이다. 한독은 돌파구로 미래성장동력에 과감히 투자하기로 하고 두 가지 전략을 세웠다. 첫 번째는 오픈 이노베이션을 통해 효율적인 R&D를 하는 것이었다. 기초 연구는 대학과 연구소에서 맡고 상업화 연구는 제약사가 분담하는 방식이었다. 제넥신 등 유망 바이오벤처에 대한 투자도 이때부터 이뤄졌다. 투자 수익도 얻고 새로운 사업 기회도 찾겠다는 시도였다. 두 번째는 의료기기, 건강기능식품 등으로 사업 영역을 확장하기로 했다. 당시 정부의 약가 인하 등으로 수익성이 나빠진 의약품 사업의 대안을 찾기 위해서였다.

한독은 본사 연구소 내에 의료기기연구소를 세웠다. 단순 진단제품이 아니라 치료용 의료기기를 개발하자는 방향도 정했다. 미국 세인트주드에서 20여 년 동안 연구원으로 지내며 의료기기를 개발해온 박을준 박사를 영입하고 디넥스 개발을 시작했다. 2015년 한국투자파트너스가 100억원을 투자한 것을 계기로 한독 의료기기연구소는 한독칼로스메디칼로 새출발했다.

약 안 듣는 고혈압 환자가 타깃

디넥스의 1차 타깃은 저항성 고혈압이다. 저항성 고혈압은 작용기전이 다른 혈압강하제 3개 이상을 병용 투여해도 혈압이 조절되지 않는 질환이다. 세계 고혈압 환자 11억 명 가운데 3억 명가량이 기존 약으로는 혈압이 조절되지 않는 환자다.

디넥스는 고혈압의 대표적 증상 가운데 하나인 교감신경 항진을 막아주는 의료기기다. 김 대표는 “교감신경을 차단하면 항진을 일으키는 물질 전달이 중단돼 혈압이 낮아지게 된다”며 “디넥스는 교감신경을 절단하는 기기”라고 설명했다.

교감신경 항진 작용은 콩팥 근처 신경에서 일어난다. 디넥스는 카테터를 신장 동맥에 집어넣어 전기 작용으로 신장 동맥 벽에 있는 교감신경을 지져 교감신경 항진을 막는 방식으로 시술하는 기기다. 한번 시술로 혈압을 10~20㎜Hg 낮출 수 있다. 김 대표는 “여러 개 약을 동시에 먹거나 평생 먹어야 하는 고혈압 환자가 아예 약을 끊거나 한두 개 복용으로 고혈압을 잡을 수 있다”며 “고혈압 치료에 새로운 가능성을 열게 될 것”이라고 했다.

디넥스는 과거 혈압약이 없던 시절에 쓰던 치료법에서 착안했다. 과거에는 개복수술로 교감신경을 제거해 고혈압을 치료했다. 기술 발전으로 카테터만으로 간편하게 수술 효과를 낼 수 있게 된 셈이다. 시술은 20~40분 정도 걸린다. 김 대표는 “시술은 한 차례만 시행해도 효과가 있다”며 “비임상에서 저항성 고혈압 환자 10명 중 7명에게서 효능을 확인했다”고 강조했다.

2~3년 내 유럽·한국 등에 출시

한독칼로스메디칼의 경쟁사는 세 곳 안팎이다. 메드트로닉 애보트 리코르 등 글로벌 제약사와 의료기기업체들이 비슷한 제품을 개발 중이다. 메드트로닉과 리코르는 미국에서 임상을 하고 있다. 오는 3월 국내와 유럽에서 임상에 들어가는 한독칼로스메디칼보다 개발 단계에서 앞서 있다. 김 대표는 “올 하반기 임상 결과가 나올 것”이라며 “출발은 늦었지만 시장 진입 시기는 엇비슷할 것으로 예상한다”고 했다.

디넥스는 유럽 CE 인증을 이미 획득했다. 그는 “임상 데이터가 확보되면 유럽에 제품을 본격 출시할 것”이라며 “2022년 유럽에 먼저 출시하고 한국에는 2023년 제품을 내놓을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한다”고 설명했다.

미국 임상은 좀 더 늦출 계획이다. 그는 “보스턴사이언티픽 등 디넥스에 관심 있는 글로벌 의료기기업체와 전략적 제휴를 맺고 미국 임상과 상업화에 들어갈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한독칼로스메디칼은 내년 글로벌 의료기기업체 등으로부터 전략적 투자도 유치할 계획이다.

2022년 유럽 등에서 디넥스가 출시되면 매출 성장세가 본격화할 것으로 내다봤다. 2021년 코스닥 상장이 목표다. 김 대표는 “2025년에는 연매출 2000억원이 무난할 것”이라며 “출시 7~8년 이내에 연매출 1조원 달성도 자신있다”고 했다.

“도전은 나의 힘”

서울대 의대를 나온 김 대표는 국내 제약의학 분야의 권위자다. 제약의학은 임상 지식을 토대로 신약개발, 임상, 약물 안전성 관리, 판매허가 업무 등을 다룬다. 제약과 의학을 아우르는 학문 분야다. 영국에는 제약의학 전문의가 따로 있을 정도다. 그는 “다국적 제약사에는 의사들이 많이 근무한다”며 “의학과 제약 지식을 아우르는 전문가가 신약과 의료기기 개발에 꼭 필요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김 대표는 서울아산병원 가정의학과 과장을 지내다 1994년 다국적 제약사 한국법인인 한국MSD 부사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10년6개월 만에 의사 가운을 벗었다. 그는 “새롭게 도전하는 것을 즐기는 성격이어서 비슷한 업무가 반복되는 의사 생활이 맞지 않았다”고 했다.

제약업계로 옮긴 김 대표는 이듬해 한국제약의학회를 창설했다. “의대생이 학교에서 배우는 의학 지식만으로는 제약산업을 제대로 이해하기 어려워요. 당시 의사 출신으로 제약사에 근무하던 사람은 5명이 전부였죠. 의사가 제약사에서 하는 실질적인 역할을 알리고 관련 지식을 공유하기 위해 학회를 세웠습니다. 더 많은 의사가 제약산업으로 왔으면 하는 바람에서였죠.”

다국적 제약사에서 잘나가던 김 대표는 2006년 또 한번의 도전을 선택했다. 국내 제약사 한독에 합류했다. 그는 “복제약에 의존하던 한국 제약사들이 도약하지 못하는 것을 보면서 아쉬움이 많았다”며 “김 회장의 제안을 받고 단번에 이직을 결정했다”고 했다.

그는 지난해 7월 한독 부회장직을 내려놓고 한독칼로스메디칼 대표를 맡았다. 벤처답게 민첩하고 모험적 조직으로 키우는 데 공을 들이고 있다. 의사결정 구조부터 바꿨다. 실무책임자에게 권한을 대폭 넘겼다. 직급체계도 단순화했다. 대리, 과장, 차장, 부장, 임원 같은 직급을 없앴다. 모든 임직원은 경영진, 팀장, 팀원으로 분류된다. 모든 직원의 호칭도 ‘책임’으로 단일화했다.

한독칼로스메디칼은 최근 본사를 서울 역삼동에서 수원 광교로 옮겼다. 우수 인력 유치를 위해 장단기 인센티브 제도를 개편하고 일반 직원에게 혜택이 많이 가도록 스톡옵션 제도를 바꿀 예정이다.

김 대표는 ‘일은 놀이’라는 철학을 지니고 있다. 노는 것처럼 몰입하다 보면 자연히 성과가 나온다는 생각에서다. 그 자신부터 놀이 마니아다. 스킨스쿠버 다이빙 스키 산악자전거 등 못하는 스포츠가 없을 정도다. 스키는 수준급이다. 대학시절부터 스키 동아리 활동을 했던 김 대표는 지금도 해마다 카자흐스탄 일본 등 해외로 원정 스키를 떠난다. 그는 “자연 속에서 도전과 호연지기를 키울 수 있어 좋다”고 했다.

박영태 기자 pyt@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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