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일 법조계에 따르면 미국 주요 반도체 테스트장비 업체인 플라스트로닉스가 국내 동종업체 하이콘을 상대로 제기한 7800만달러 손해배상 소송에서 하이콘은 법무법인 율촌의 자문으로 이를 방어하고 도리어 130만달러의 손해배상 청구를 인정받은 배심원 평결을 지난 7월 받아냈다.
플라스트로닉스는 완성된 반도체가 출하되기 전 전기적 성능검사를 통해 불량 여부를 판단하는 소모성 부품인 ‘반도체 테스트 소켓’을 생산하는 업체다. 하이콘은 이 반도체 테스트 소켓에 들어가는 접촉부품(콘택트 핀)을 개발·제작하는 업체다. 황동원 하이콘 대표는 회사를 설립하기 전 엔지니어로서 콘택트 핀과 관련한 세계 최초의 기술을 다수 개발해 전 세계 특허권을 보유하게 됐다. 2004~2008년 플라스트로닉스 최고기술책임자(CTO)로 잠시 재직하며 이 기술의 일부 특허권을 플라스트로닉스에 넘겼다. 황 대표는 2008년 귀국, 하이콘을 설립해 독립했다. 하이콘은 2015년 글로벌 메모리 반도체 3위인 미국 마이크론의 1차 협력업체가 됐고, 미국 수출이 급증해 2016년 2000만달러 수출탑도 받았다.
하이콘의 급격한 미국 시장 잠식을 못마땅하게 여긴 플라스트로닉스는 황 대표의 기존 특허권 양도 계약을 근거로 하이콘의 미국 수출은 특허침해 행위라는 주장을 제기했다. 하지만 하이콘을 대리한 율촌은 미국 수출이 (주)하이콘이 아니라 하이콘의 개인회사를 통해 이뤄진 점을 강조하며 특허침해가 아니라고 주장했다. 또 이를 입증할 김영란 미국 유타대 법대 교수의 의견서 등을 제시하자 텍사스동부지법 배심원단도 특허침해를 인정하지 않았다. 율촌은 상대방 측이 계약을 잘못 해석한 점을 부각해 오히려 130만달러의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하는 역공을 펼쳤다.
법조계에선 삼성전자 화웨이 등의 패소가 잇따라 특허 소송에 관한 한 ‘외국 기업들의 무덤’으로 불리는 텍사스동부지법에서 이 같은 승소 기록이 나왔다는 점에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특허청에 따르면 텍사스동부지법은 최근 5년간 미국에 진출한 국내 기업에 대한 특허소송이 가장 많이 제기된 법원이다.
안대규 기자 powerzanic@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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