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박12일 유럽 휴가 떠나는 이대리…휴가원 내고도 일하는 김과장 [김과장 & 이대리]

입력 2019-12-23 14:56   수정 2019-12-23 15:23


한 해를 정리하는 12월. 대부분의 업무가 마무리되는 시기다. 남은 연차는 어떻게 해야할지 슬슬 신경이 쓰인다. 일부 직장인은 이번주부터 휴가를 몰아 써 긴 연휴를 보내기도 한다. 한편에선 연말연시 연휴가 ‘그림의 떡’인 직장인도 있다. 해야할 일이 많다거나 휴가 쓰는게 눈치가 보여서다. 연차를 남겨둔 김과장 이대리의 서로 다른 속사정을 들어봤다.

늘어나는 연말 휴가 권장 기업

최근 일부 기업은 업무 집중도가 떨어지는 연말에 연차를 적극 권장한다. LG그룹 계열사에 다니는 김모 사원(30)은 연말연시 11박12일 유럽 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연차 휴가 6일에 크리스마스와 1월 1일 공휴일을 붙여 최장 12일간 쉴 수 있도록 장려한 덕분이다.

LG그룹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연말에 임직원이 최장 12일간 쉴 수 있도록 연차 사용을 적극 권장하고 있다. 김 사원은 “회사 차원에서 휴가를 독려하고 있어 윗분이나 동료들 눈치를 보지 않고 긴 여행을 떠날 수 있었다”고 말했다.

CJ그룹도 연차 소진을 장려하고 있다. 연말을 특별 연휴 기간으로 정하는 방식으로다. CJ그룹은 매년 크리스마스가 끝난 26일부터 31일까지를 ‘골든위크’ 로 정하고 있다. 남은 연차 범위 내에서 무조건 쉬도록 정한 기간이다. 올해의 경우 4일만 연차를 쓰면 1월 1일 공휴일을 포함해 8일간 쉴 수 있다.

한 식품회사에서는 이달 매주 월, 금요일마다 연차 소진 일정을 정해 3일씩 휴가를 돌아가며 쓰고있다. 연차를 의무적으로 소진하려는 조치다. 이 회사에 다니는 이 대리는 “연차표를 짜면서까지 휴가를 독려하니까 자리를 비우는데 대한 부담이 거의 없다”고 말했다.

외국계 기업은 연말이 사실상 휴업 분위기다. 미국 등 해외 본사들이 12월 중순부터 연말까지 휴식 기간을 갖기 때문이다. 본사가 쉬기 때문에 업무를 이어가기 힘들어 남은 연차를 이용해 쉬는 경우가 많다.

외국계 정보통신(IT)회사에 다니는 김모씨는 23일부터 내년 1월 1일까지 휴가를 냈다. 싱가포르로 여행을 떠나 그 곳에서 새해를 맞을 계획이다. 김 씨는 “업종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외국계 회사는 대체로 비슷한 분위기”라며 “팀내에는 2주간 휴가를 간 사람도 있다”고 말했다.


연말 휴가가 ‘그림의 떡’인 회사도

연말 휴가가 ‘남의 일’인 직장인은 10일 이상씩 휴가를 가는 주변 직장인들을 보면 속이 쓰리다. 외국계 기업을 사업 파트너로 두고 있는 중견기업에 다니는 정대리(33)는 종종 기분이 상하곤 한다. 본인은 정작 눈치 보느라 남은 연차를 못 쓰는데 거래처 담당자는 연말 장기 휴가를 떠났다는 얘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정 대리는 “회사별로 휴가 정책에 큰 차이가 있는걸 알게되면 억울한 마음까지 든다”고 토로했다.

중소기업에 다니는 최모 대리는 올해도 연차 소진을 포기했다. 회식을 하던 중 부장이 기분 좋아 보이는 틈을 타 “부장님, 제가 올해 연차가 아직 많이 남아 있는데요”라고 운을 뗐지만 돌아온 것은 “나도 많이 남았는데?” 라는 대답이었다. 그는 “의무소진일수도 못채워 돈으로도 못받는데 너무 억울하다”며 “매년 남은 연차를 모아 긴 휴가를 떠나는 친구들이 부럽기만 하다”고 하소연했다.

지난해에 스타트업(신생벤처기업)으로 이직한 데이비드 김(영어 예명·33)씨는 연차 일수에 제한이 없다는 사실이 기뻤다. 하지만 실상은 달랐다. 업무 강도가 높다보니 지난 1년 동안 나흘 밖에 못쉬었다. 부장은 “휴가 가지 말라고 눈치 주는 사람도 없는데 왜 못 갔느나”며 “제 밥그릇은 스스로 챙기라‘”는 식으로 핀잔을 줬다. 그는 올해 작정하고 열흘 정도 연말연시 휴가를 가기로 했다. 김 씨는 “올해 쉰 날을 꼽아보면 15일 안팎”이라며 “연차가 자유로운 스타트업이라 해도 일반 기업과 별 차이가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휴가 쓰고도 출근해

막판에 연차를 몰아서 소진해 휴가를 떠났다가 다시 회사로 불려나가는 경우도 심심치 않게 발생한다. 서울의 한 중견 제조업체에서 일하는 최 과장은 연차를 낸 김에 가족과 함께 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그런데 휴가 첫 날 최 과장은 “사장에게 중요한 보고를 할 게 생겼으니 회사로 나오라”는 호출을 받았다.

‘악몽’은 그날로 끝이 아니었다. 해당 업무는 주말까지 이어졌다. 최 과장은 “휴가를 쓰고도 주 52시간 이상 업무를 했다”며 “결국 휴가 반납은 물론 주말에는 무료봉사를 한 셈”이라며 불만을 토로했다.

공공기관에 다니는 박 대리(35)도 이달 연차를 열흘 가까이 썼지만 실제로 모두 출근했다. 부서장 평가에 직원들의 연차 소진률이 들어가기 때문에 부장은 연차 소진을 강요했지만 업무가 많아 쉴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박 대리는 “어차피 쉬지 못 할 거라고 생각하고 출근하니 차라리 마음이 편하다”고 씁쓸히 말했다.

홍윤정 기자 yjho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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